탁구공으로 이룬 46일간의 작은통일… 남북단일팀 이야기 그린 영화 ‘코리아’
입력 2012-04-19 18:25
각본 없는 스포츠는 때때로 극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선수들의 투혼으로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영화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올림픽 경기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이나 스키 점프 선수들의 애환을 그린 ‘국가대표’(2009)는 스포츠 영화의 성공적인 사례다.
또 다른 한 편의 스포츠 영화가 관객들을 찾아온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북 단일팀의 이야기를 담은 ‘코리아’.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는 선수들의 고된 훈련과 통쾌한 승리가 감동을 자아내는 것 외에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웰컴 투 동막골’(2005)처럼 남북이 하나로 어우러져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90년대 한국에 탁구 열풍을 몰고 온 최고의 탁구 스타 현정화(하지원). 번번이 중국에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던 그녀에게 지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 단일팀 결성 소식이 들려온다. 금메달에 목마른 정화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선수와 코치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유의 남북 단일팀이 결성되고 마침내 일본 합숙 훈련에 들어간다.
46일간 함께 지내는 ‘코리아’ 팀은 생활 습관은 물론이고 연습 방식과 말투까지 너무 달라 사사건건 부닥친다. 현정화와 북한 리분희(배두나) 선수의 신경전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대회는 점점 다가오지만 호흡이 맞춰지기는커녕 오히려 갈등만 깊어지는 선수단. 남북 단일팀은 대회 9연패를 노리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중국의 결승전 경기이지만 남북한 선수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다 일심동체를 이루는 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서먹해하던 선수들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열고 어느새 ‘형’ ‘언니’라고 부르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결승전을 앞두고 북한 측에서 선수들의 ‘사상’을 이유로 돌연 철수를 지시하는데….
현정화와 리분희 역을 각각 완벽하게 소화해낸 하지원과 배두나의 연기가 빛난다. 중요한 순간마다 ‘파이팅’을 외치는 하지원과 냉정한 승부사의 기질을 보여준 배두나의 연기는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의 헌신적인 훈련 지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작품으로 데뷔한 문성현 감독은 웃음과 유머를 적당히 버무리다 결정적 순간에 눈물을 쏟게 하는 연출력을 뽐냈다. 다만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과장되고 억지스런 장면을 곳곳에 배치해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91년 4월 29일, 여자 단체전 결승. ‘코리아’ 팀은 중국에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기적을 이뤘다. 탁구 단체전 우승은 18년 만의 일이었다. 남북한 선수들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고, 경기장은 ‘코리아’ 함성으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탁구공 하나로 작은 통일을 이뤘지만 그들은 이후 21년 동안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5월 3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