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의 溫 시네마-디어 한나] 서로에게 향하는 구원의 빛
입력 2012-04-19 18:11
은발의 짧은 머리와 거친 흰 수염이 성글게 덮인 턱, 주름진 빨간 목의 전형적인 영국의 도시 하층 계급에 속할 것만 같은 조셉은 알 수 없는 분노로 꽉 막힌 가슴 속을 달래려는 듯 여느 때처럼 동네 바에서 한 잔 걸치고 있다. 한 쪽 당구대에선 어린 양아치들이 자기들끼리 찧고 까불며 큰 소리로 떠든다. 조셉은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이내 폭발한다. 상처 입은 들개마냥 동네를 싸돌아다니다 옷가게로 들어가 옷걸이 틈 사이로 몸을 숨긴다. 구제옷 가게 주인 한나는 조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마디 건넨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 드릴까요?” 2011년 선댄스영화제와 영국아카데미영화제가 가장 주목한 감독 중 하나인 패디 콘시딘 감독이 연출한 ‘디어 한나’는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경계가 무너진 분노와 상처를 끄집어내 치유하고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소통하고 관계하면서 또 거기에서 상처를 주고 치유를 얻기도 한다. 내가 그곳에 있고 거기에서 그녀를 만나는 것이 우연일까? 내 의지가 그녀에게로 인도했다면, 그 의지는 무엇에 의해 이끌렸을까? 세상을 둘러싼 섭리와 조화는 존재 그 자체일까? 조셉과 한나,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는 서로 상호작용하여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한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본질을 넘어 선 존재, 즉 신에 의하여 짜인 틀 안에서. 억압되고 불쌍한 영혼을 가진 남자 조셉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그 억압을 광기어린 분노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향해 내던져버리는 것이다. 그 분노는 자신이 기르던 개마저 죽게 만들고 동네 양아치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한다. 그 후에 조셉을 기다리는 건, 그의 부인이 남기고 간 낡고 텅 빈 외로운 집 한 채 뿐이다. ‘이 어둠속에서 제발 나를 구해 주세요.’ 그렇게 한나를 찾아간다. 한나는 그를 기도로 맞이한다. 그녀는 겉으로 보이기는 전형적인 영국 중산층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잘나가는 남편을 둔 여자다. 방이 다섯 개 딸린, 둘이 살기에는 다소 큰집에 사는 그녀는 조셉이 사는 동네에서 구제 옷가게를 운영하는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조셉이 가진 상처보다 훨씬 큰 아픔이 있다. 그녀의 남편 제임스는 변태 성욕자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자고있는 한나에게 조용하고 느닷없이 오줌을 갈긴다. 한나를 부정한 여자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심지어 주먹질을 한다. 사회에선 번듯하고 모범적인 가장이지만 결함(상처)이 있다. 그 결함으로 만들어진 칼끝은 늘 한나를 향한다.
조셉은 어느 날 친구의 장례식에 입고 갈 옷을 구하기 위해 한나의 옷가게에 들른다. 그녀가 골라 준 검은 정장을 입고 흡족한 얼굴로 거울을 바라보는 조셉에게 한나는 넥타이를 매주려 한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 조셉과 상처받고 의지할 곳이라곤 기도밖에 없는 여인 한나, 각자의 아픔으로 지쳐있는 서로는 처음으로 상대방에게서 구원의 빛을 감지한다. 그 순간, 제임스가 가게로 들어선다. 한나는 이 상황을 남편에게 설명하지만 돌아오는 건 제임스의 폭력뿐이다. 조셉에게 치욕스러운 순간을 처음으로 보이게 된 한나는 그를 가게에서 쫓아낸다. 이 절망적인 상황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는 예수의 초상화를 향해 한나는 저주를 퍼붓는다.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패디 콘시딘 감독은 한나의 옷가게에서 이렇듯 마음속에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처럼 큰 상처를 가진 세 인물들을 조우시킴으로써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관계에 의한 치유와 구원, 그리고 또 다른 상처를 집약적으로 얘기한다. 그들은 계속되는 교감과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들의 삶에 작은 빛을 가져왔다. 결국 한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예수의 초상화는 처절한 상처를 가진 이 가련한 여인을 구원하기 위해 조셉이라는 빛을 보냈다. 오는 5월1일 새롭게 개관하는 기독교 복합문화공간 ‘필름포럼’극장에서 이 땅의 상처받은 또 다른 조셉, 한나와 함께 이 영화를 함께 나누기를 소망한다.
(제10회 서울국제기독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