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 이주노동자의 삶·꿈 현장 리포트… ‘이주, 그 먼 길’
입력 2012-04-19 18:04
이주, 그 먼 길/이세기/후마니타스
이주민 출신 이자스민씨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는 한국 사회의 이주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지만 실제 이주민 실태가 어떤지를 살피는 데는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파키스탄 이주노동자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인천 남동 공단에서 모임이 있는데 함께 할지를 묻는다. 좋다고 답한 뒤 찾아가는 공단 길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회합 장소인 공장 기숙사에 들어서자 카오스처럼 벗어 놓은 얽히고설킨 신발이 자못 절경이다. 저것이 바로 삶이라면 그야말로 극적이다. 라호르에서, 카라치에서, 이슬라마바드에서 신발이 끌고 왔을 이주의 길이 불현듯 궁금했다.”(95쪽)
199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 이세기(49)씨가 2005년부터 ‘한국이주인권센터’와 ‘아시아이주문화공간’에서 상담사로 활동하며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엄연히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일터에서, 길거리나 시장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너희 나라로 가”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한국에 왔다가 30대 중반이 된 숙련 노동자에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정착의 꿈을 꾸는 이주민에게,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무국적자가 됐지만 어느덧 취학연령에 이른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는 ‘너희 나라’는 어디일까.
“‘온종일 방 안에서 놀아요. 밤이면 가끔 산책을 나가요.’ 네 살 된 돈나린의 하루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돈씨 부부는 한국 생활 9년째를 맞고 있다. 부인인 린씨가 산업연수생으로 먼저 한국에 왔다. 그리고 얼마 뒤 남편이 고용허가제로 들어왔다. 그 사이 한국에서 둘째 돈나린을 낳았다. 돈나린은 국적이 없다. 태어나자마자 무국적자가 되었다. 필리핀 친정에서 자라고 있는 첫째는 열 살이 되었다.”(235쪽)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외국인 근로자 임금 체불 신고액은 총 3562개 사업장에 211억9000만원에 이른다. 산업재해를 당한 뒤에도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불법체류를 단속하는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쫓기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들의 숙원인 이주노조는 여전히 허가받지 못한 상태로 대법원에 관련 소송이 계류된 채 ‘법외 노조’로 남아 있다.
저자의 시선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살다가 자진 출국, 부적응, 강제 추방 등의 사유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귀환 이주노동자의 행적을 쫓아 국외로 나가기도 한다.
“리욤씨는 2005년경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 입국한 지 2개월도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프레스에 그의 손가락이 싹둑 날아갔다. 손가락 다섯 개의 보상금은 3100만원이었다. 그 돈을 가지고 태국에 와서 택시 두 대를 소유한 사장이 되었다. 그는 차에 오른 나를, 웬일인지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오른손을 치켜세우며 배웅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달라는 뜻 같았다.”(47쪽)
1인칭 시점으로 써내려간 리포트는 역설적으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의 임상 분석’이기도 하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