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차기 국회의 우선 과제는 개헌
입력 2012-04-18 21:49
“대통령 5년 단임제 부작용 커… 분권형 이원집정부제나 중임제 논의할 때”
이번 총선에 출마한 친구의 유세장을 응원 차 방문한 적이 있었다. 축제 같은 과거의 시끌벅적한 유세분위기를 상상한 나는 의외로 차분한 현장에 적잖이 놀랐다. 유세차량은 구 단위로 한 대씩, 플래카드는 동별로 한 개씩 걸 수 있는 선거법이 과거의 들떴던 선거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총선 유세장에는 지역 민원 해결방안이나 정책 대결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세 과시의 장으로 변질됐던 합동유세가 폐지된 탓도 있지만 12월로 다가온 대통령선거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됐다. 많은 후보들은 대선 유력후보와 정치적 생명을 함께하겠다거나, 또는 유력후보와 악수하는 사진을 내거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대신하고 있는 듯했다. 이번 총선은 철저하게 대선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민간인 사찰 등 현 정권의 각종 의혹을 제시한 야당도 종국적으로는 정권심판과 정권교체를 겨냥했음이 분명했다. 야당의 한 유력 대선 주자는 정권교체를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급해진 보수 여당은 15년 만에 당명까지 바꿨고 변화와 개혁을 외치며 야당의 공세에 맞불을 놨다. 심지어 보수집단이 혐오하는 빨간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선정하는 파격으로 변화를 입증해 보였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은 박근혜라는 유력한 대선후보를 조기에 앞세워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역대표를 뽑는 총선에서 대선을 염두에 둔 선거운동이 펼쳐진 것은 대선승리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되는 헌법의 권력구조에 있다. 사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제왕적 지위를 허용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네 대선만큼 승자독식의 논리가 적용되는 게임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선거운동은 극렬해지고 죽기 아니면 살기 식 사생결단의 장으로 변한다.
새롭게 뽑힌 19대 국회의원들은 이제 통치권력 개편을 위한 개헌을 공론화해야 될 때가 됐다. 앞선 두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나서 개헌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우선 제왕적 권력을 분할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국회와 권력을 나누는 의원내각제나, 국방·외교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는 총리가 책임지는 분권형 이원집정부제도 심도있게 검토해 볼 만하다. 현 정권 전반에 이원집정부제를 염두에 둔 개헌 논의 필요성이 정치권에서 대두됐지만 추진 동력부족으로 흐지부지됐었다.
대통령제를 고수할 경우 현행 5년 단임제의 문제점에 주목하길 바란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과거 군사독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역사적 반성 속에서 탄생했지만 단임이란 틀에 갇혀 정치발전을 거스르는 경우도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시절 중임제든 연임제든 대통령 임기를 바꿔보자고 제안했던 때가 있었다.
연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은 짧은 임기 내에 역사적으로 남을 한 건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역사적으로 남을 일이 5년 안에 될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 압박감 속에서는 4대강 사업 같은 일이 무리하게 치러질 수밖에 없다.
연임제가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실제 임기는 5년이 안된다. 서슬 퍼렇던 권세도 3년이 지나면 서서히 힘이 빠지고 1년을 남기고 대선 정국에 들어가면 후임 대선주자에 힘이 실리며 권력무상을 실감해야 한다. 심각한 것은 당내 후임 주자의 전임자에 대한 부정이다. 대선승리를 위해서라면 전임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전임자에 대한 부정을 서슴지 않는다.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당원들에 의해 화형식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독재를 막는 데만 급급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 조항은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책임감을 갖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헌법 개정의 필요 이유다. 헌법은 독재도 막아야 하지만 정치발전, 나아가 국가안보와 국민의 행복권을 보장하는 보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