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 사이, 한밤이 더 매혹적인 ‘연인들의 섬’… 인천 옹진군 삼형제섬 신도·시도·모도
입력 2012-04-18 18:23
처음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이 꼭 가보아야 할 섬은 어딜까? 그 섬은 지중해의 산토리니도 아니고 남태평양의 타히티도 아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스칠 듯 날아다니는 삼형제섬 신도, 시도, 모도이다. 인천 옹진군 북도면에 위치한 신도, 시도, 모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연인’ ‘풀하우스’ ‘슬픈 연가’의 촬영 무대. 3개의 섬이 연도교로 연결돼 있는데다 서울에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타고 영종대교를 건너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삼형제섬의 맏형인 신도까지는 철부선으로 10분 거리. 매시 10분에 출항하는 철부선에 승선하기 위해 평일에도 자동차나 자전거를 탄 연인들이 길게 줄을 선다. 연인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는데 익숙한 갈매기들과 함께 출항한 철부선은 신도선착장에 먼저 들른 후 장봉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삼형제섬 중 맏형인 신도(信島)의 옛 이름은 ‘진염’으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생산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인근 강화도 마니산에서 내려다볼 때 듬직하고 믿을 만하게 생겼다고 해서 신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도 여행은 선착장에서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섬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된다.
드라마 ‘연인’의 세트장은 강화도·김포·영종도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섬 북서쪽의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성형외과의사 미주(김정은)가 조직폭력배 두목 강재(이서진)의 상처를 치료했던 교회는 안타깝게도 폐허로 변했다. 하지만 연인의 사랑을 상징하듯 세트장 주변 야산에 무리지어 피어난 진달래는 핏빛처럼 붉다.
신도의 한가운데 위치한 구봉산은 해발 178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벚나무가 우거진 임도와 등산로는 산악자전거와 트레킹을 즐기기에 좋다. 구봉산 정상 아래에 위치한 구봉정에 오르면 푸른 바다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섬들이 두루마리처럼 펼쳐지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신도와 모도 사이에 위치한 시도(矢島)는 고려의 군사들이 강화도에서 이곳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신도와 시도를 잇는 연도교는 원래 하루 두 번만 모습을 드러내던 잠수교였다. 조류 흐름이 바뀌면서 뻘이 쌓여 생태계가 교란되자 잠수교를 헐어내고 2005년에 400m 길이의 다리를 놓았다. 신도와 시도 사이의 바다는 대나무 발을 V자로 엮은 살막이를 설치해 물고기를 잡던 곳. 요즘도 낚싯줄을 던지면 망둥이와 우럭이 줄줄이 올라오는 바다낚시 명소로 이름 높다.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시도는 삼형제섬 중 볼거리가 가장 많은 곳으로 면소재지. 연도교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바닷가 둑길을 따라가면 갈대가 무성한 한반도 모양의 생태공원과 시도 염전이 나온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저염도의 천일염으로 소금창고에는 시간의 앙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염전에서는 하얀 꽃잎을 닮은 소금 결정이 나날이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하얀 별장처럼 보이는 ‘슬픈 연가’ 세트장은 북쪽 해안의 해송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준영(권상우), 혜인(김희선), 건우(연정훈), 화정(김연주) 등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네 남녀의 순애보를 그린 ‘슬픈 연가’의 세트장도 출입문은 폐쇄된 채 먼지만 자욱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세트장에서 왼쪽 솔숲 사이로 난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아담한 해변이 나온다. 이곳에서 ‘풀하우스’ 세트장까지는 해안선을 따라 약 700m. 물이 빠지면 시선 가는 곳까지 갯벌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강화도 마니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풀하우스’ 세트장은 해변이 끝나는 수기해수욕장에 위치하고 있다. 삼형제섬의 유일한 해수욕장인 수기해수욕장은 길이 400m의 고운 모래해변과 드넓은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수기해수욕장에 V자로 돌을 쌓아 만든 독살에는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은색 비늘을 번쩍이며 뛰어놀고 있다. 빨간 우편함이 인상적인 ‘풀하우스’ 세트장은 작가 지망생 지은(송혜교)과 한류 스타 영재(정지훈)의 러브스토리가 곳곳에 배어 있어 지금도 동남아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시도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펜션들이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모도와 장봉도가 바라다 보이는 시도 서쪽 해안의 시도민션(www.cidominsion.com)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곳. 해가 장봉도 끝에 걸리면 바다와 하늘은 물론 예전에 돌을 쌓아 해수욕장으로 사용하던 갯벌까지 황금색으로 물든다.
삼형제섬의 막내인 모도(茅島)는 7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섬. 한 어부의 그물에 물고기와 함께 띠(풀)가 섞여 있었다고 해서 띠엄으로 불리다 ‘띠 모(茅)’를 써 모도로 명명됐다. 모도 입구의 섬사랑굴사랑(032-751-7536)은 영양굴밥과 소라덮밥 전문 음식점. 모도 앞바다의 뻘에서 생산된 자연산 굴은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기로 이름났다.
모도에는 암행어사 불망비가 하나 있다. 130여 년 전 강화 출신 암행어사 이건창이 과중한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던 모도 주민을 위해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주자 주민들이 불망비를 세웠다. 안타깝게도 비석은 반으로 갈라졌고 복원과정에서 매끈하게 붙지 않자 옆에 새 비석을 만들고 철제 울타리를 쳐놓아 주객이 전도된 느낌. 불망비에서 외길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럽게 배미꾸미조각공원에 도착하게 된다. ‘배미꾸미’는 해변의 모양이 배 밑구멍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배미꾸미 해변에는 조각가 이일호씨의 사랑과 성을 주제로 한 에로틱한 조각 작품 50여 점이 전시돼 연인들을 쑥스럽게 한다.
삼형제섬은 한밤에 더욱 매력적이다. 바다 건너 영종도의 인천국제공항 가로등과 분주하게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의 불빛을 어둠 속에서 보고 있노라면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연인 못지않게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삼형제섬을 자주 찾는 이유다.
옹진(인천)=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