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풀고 축제 보고 이보다 좋을 水없다… 온천축제 열리는 대전 유성
입력 2012-04-18 18:05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을 그린 채만식의 ‘탁류’에는 가련한 여주인공인 초봉이 처음 보는 온천장의 시설에 주눅이 드는 장면이 나온다. 제호의 꾐에 빠진 초봉이 서울행 기차를 타고 가다 들른 온천장은 바로 대전의 유성온천. 한때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던 그 유성온천에서 이팝나무 꽃향기 그윽한 오월에 ‘2012 대한민국 온천대축제’가 열린다. 유성온천의 역사는 1300여 년 전 백제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신라와 전쟁 중 부상당한 아들의 약을 찾아 나선 한 어머니는 눈 쌓인 들판에서 웅덩이의 따뜻한 물로 날개 상처를 치료하는 학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그 물로 아들의 상처를 말끔히 치료한 후 그곳에 움막을 짓고 많은 환자들의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유성온천이 위치한 봉명동 일대다. 유성(儒城)은 ‘백제의 선비들이 모여 사는 성’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유성온천에 대한 공식적 기록은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시대 태조와 태종이 유성온천에서 자주 온천욕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후 오랫동안 방치돼 온 유성온천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온천장은 1932년 충남 공주 갑부 김갑순이 유성관광호텔 자리에 개설한 것이 시초였다. 현재 유성관광호텔 인근에는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갑순의 공덕비와 온천공이 보존돼 있다.
1970년대에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된 유성온천은 현재 온천욕 시설을 갖춘 13개 관광호텔 등 200여 개의 숙박시설에 연간 2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다. 온천욕을 즐기는 관광객이 늘어나자 유성구는 온천거리에 이팝나무 가로수를 심고 편의시설도 설치했다.
유성온천을 대표하는 시설은 계룡스파텔 인근에 위치한 야외 온천족욕장.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온천수가 흐르는 족욕장은 온천대축제를 앞두고 50㎡에서 94㎡로 확장됐다. 연중 무료로 개방되는 32m 길이의 족욕장에는 피톤치드가 함유된 편백나무탕과 발 건조시설도 만들어져 17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야간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경관조명을 설치하고 물레방아·분수·산책로도 갖춰 주말에는 1000여 명이 몰려들어 불야성을 이룬다.
지하 200∼600m에서 솟아나는 유성온천의 온천수는 섭씨 42∼65도의 알칼리성 단순천으로 수질이 매끄럽고 피부에 자극이 없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황, 칼슘, 아연, 철 등 미네랄 성분이 골고루 함유돼 피부미용은 물론 최근에는 재활치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온천욕이 끝나면 과학체험에 나설 차례. 유성에는 한국과학기술의 본산인 대덕연구단지와 벤처산업의 요람인 대덕밸리가 위치하고 있다. 특히 20여 년 전 대전세계박람회가 열렸던 엑스포과학공원에는 첨단과학관, 시뮬레이션관, 바다월드, 돔영상관, 전기에너지관, 에너지관 등 주제별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 갑천을 가로지르는 엑스포다리는 수면에 비친 야경이 아름답다.
엑스포과학공원과 이웃한 국립중앙과학관은 국내 최대의 23m 돔을 가진 천체관을 비롯해 상설전시관, 특별전시관, 첨단과학관, 생물탐구관, 사이언스홀(영화관) 등을 갖추고 있다. ‘사이언스 타운’에는 여러 갈래로 연결된 나팔관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지르면 불이 들어오는 전구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시물들이 가득하다. 국립중앙과학관과 엑스포과학공원을 오가는 자기부상열차도 타볼 만하다.
이밖에도 유성에는 행성과 달, 성운, 은하 등을 관측하는 대전시민천문대를 비롯해 광물과 암석 화석 등 2000여 점의 지질 표본을 전시한 지질박물관,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화폐 역사를 한눈에 보는 화폐박물관,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전시물을 진열한 대전선사박물관, 중부권 최대의 테마파크인 꿈돌이랜드 등이 있다.
유성구에는 도보여행을 겸해 과학시설과 박물관을 둘러보는 대덕사이언스길도 개설돼 있다. 과학과 자연이 만나는 대덕연구개발특구의 대덕사이언스길은 과학관과 박물관은 물론 산과 공원, 하천과 도심을 경유해 가족과 함께 걷기에 좋다. 엑스포과학공원에서 출발해 도룡정∼화암네거리∼대덕대학∼매봉공원으로 이어지는 1코스는 11.1㎞.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성두산공원∼시민천문대∼충남대 뒷산∼궁동공원으로 이어지는 2코스는 10㎞로 관람을 겸해 걸으면 각각 한나절은 걸린다.
대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