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로 총선 승리 이끈 ‘김종인·이상돈·이준석’… 朴의 페이스메이커, 대권 레이스에도 먹혀들까
입력 2012-04-18 18:58
마라톤 경주에 속도와 보폭을 조절하면서 유력 주자의 우승을 돕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란 주자가 있다. 승자 독식의 정글 법칙이 지배하는 정치권에 그것도 대선정국에서 새누리당에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이준석 이상돈 비대위원과 김종인 전 비대위원이 그들이다. 김형태 당선자가 18일 자진탈당하고 문대성 당선자의 출당 여론이 당내에서 고조되면서 이들 3인방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페이스메이커감이라는 평가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4·11 총선 다음날인 12일 오후 새누리당이 총선 승리에 도취해 있을 시간, 이준석 위원은 MBN TV에 출연해 “과반 의석을 무너뜨려서라도” 두 당선자를 정리해야 한다고 날벼락 같은 발언을 했다. 당내에선 20대 ‘애송이’ 정치인의 ‘치기(稚氣)’라는 반응이 많았다. 과반 의석을 포기하자는 건 기성 정치인들의 사고로는 금기(禁忌)와도 같았을 것이다. 박 위원장도 13일 선대위 해단식에서 “사실 확인 후 입장을 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위원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박 위원장이 16일 비대위 회의에서 기자들에게 “지난번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그는 “이러니 굼뜬 정당”이라고 되받아쳤다. 이상돈 위원과 김종인 전 위원도 17일 “시간 끌 일이 아니고 사실이면 의원직 사퇴를 해야 한다”고 적시타를 쳐줬다.
그러자 이상일 대변인은 이날 밤 ‘김 당선자 출당 검토’로 당이 선회했음을 공식 알렸다. 물론 여기에는 김 당선자의 제수가 공개한 테이프의 성문을 분석한 결과 김 당선자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온 것도 작용했다.
이준석 위원이 처음 주장한 지 6일 만에 김 당선자를 쫓아낸 것이다. 문 당선자마저 당을 떠나게 되면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은 붕괴된다. 이는 대선정국에서 새누리당이 천신만고 끝에 확보한 국회 권력을 내주는 일대 사건이다. 그러니 여론에 떠밀려 며칠 사이 소신을 접은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정치권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누리당의 단독 과반 승리에는 3인방의 못 말리는 ‘노이즈마케팅’이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들은 MB정부 실세 용퇴, 대통령 탈당, 보수 강령 삭제와 경제민주화, 공천 쇄신과 부적격 공천자 취소 등 대형 이슈를 공세적으로 주도하면서 박 위원장의 ‘과거와의 단절’에 힘을 보탰다. 박 위원장에게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기도 했고 김 전 위원은 사퇴로 항거(?)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 리더십에 손상이 갔다는 일부 지적도 있으나, 총선 민심은 박 위원장에게 과연 ‘선거의 여왕’임을 재확인시켜줬다. 3인방 때문에 과반 의석이 붕괴되더라도 독(毒)이 아닌 약(藥)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달리는 말에 채찍이랄까. 이준석 위원은 이날 평화방송에 출연해 “저는 70%의 확신만 있어도 움직이자고 주장하는 편이지만 박 위원장은 95%의 신뢰가 있을 때까지 안 움직인다”며 “박 위원장이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서 퍼센트를 지금보다 조금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이 위원과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 김 전 위원의 페이스메이커 전략이 박 위원장의 대선 가도에도 먹혀들지 두고 볼 일이다.
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