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원사건 이후 112 장난전화 쏟아져도… 오인신고 처벌못해 치안공백 우려
입력 2012-04-17 21:55
‘살려줘(막 흐느끼는 목소리로), 살려줘….’
지난 15일 오전 4시7분 충북경찰청 112신고센터에 A씨(23·대학생)가 여자친구 B씨(22)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고 신고했다. A씨는 B씨가 오전 3시36분 휴대전화로 이런 내용으로 말한 뒤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충북경찰청은 B씨가 오산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확인, 경기경찰청에 이를 통보했다. 경기경찰청은 오전 4시15분 전 직원 비상동원령을 내렸다. 관할경찰서인 화성동부경찰서장을 비롯한 동부서 전 직원 480여명이 배치됐다. 방범순찰대원 270여명과 경기경찰청 형사과장 등 모두 620여명이 대대적인 미귀가자 소재 추적 및 탐문수사를 벌였다.
결과는 어이가 없었다. 경찰은 이날 오후 2시쯤 B씨가 인터넷게임으로 만난 C씨(35)와 새벽까지 술 마시며 A씨를 놀려주려고 장난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사건은 B씨 어머니가 경찰에 이날 오후 4시5분 “딸이 귀가했다”는 전화를 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같은 날 낮 12시35분 경기 안산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에 “부인이 납치됐다”며 남편(47)이 급하게 달려와 신고를 했다. 남편은 이날 오전 10시쯤 고향친구의 연락을 받고 나간 부인(44)이 문자메시지로 ‘납치’라고 보낸 데 이어 휴대전화로 “마지막 통화가 될 것 같다. 아산만 같은데 산이다”라고 말하고 연락이 두절됐다고 설명했다.
안산경찰서는 충남 아산경찰서와 인근 평택경찰서에 급히 공조수사를 폈다. 위치추적에 나선 경찰은 오후 1시55분 평택 아산호 부근 횟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신고자의 부인을 찾아냈다. 장난이었다.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 이후 경기경찰청 관내에서는 ‘성폭행’ ‘납치’ 등의 긴급 신고전화가 하루 10여건씩 접수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경찰로서는 신고를 받으면 적극 나설 수밖에 없어 곤욕을 치르기 일쑤다.
장난전화로 밝혀져도 쉽게 처벌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행법에는 피해 당사자가 위급상황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가 허위로 밝혀질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벌금형(10만원)에 그치는 실정이다. 피해 당사자의 장난전화를 급박한 상황으로 인식해 이를 신고한 사람은 처벌에서 제외된다.
경기경찰청 김춘섭 형사과장은 “오인신고로 인한 출동으로 막대한 치안공백이 우려된다”며 “민감한 내용의 장난전화의 심각성을 인식해 아예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원=김도영 기자 do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