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人治로는 안 된다

입력 2012-04-17 18:03


지난 2월 초 수면 위로 드러난 ‘보시라이 사건’이 석 달째 중국 정국을 달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금방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오는 10월 제18차 당 대회까지, 나아가 그 뒤까지 파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권력 지형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보시라이 사건의 뿌리는 길고도 깊다. 가깝게는 영국인 닐 헤이우드가 지난해 11월 독살되면서 폭발 시기가 앞당겨진 셈이다. 그러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가 랴오닝성 다롄에서 시장, 서기 등을 지낸 1990년대부터 사건은 잉태되고 있었다. 헤이우드와 보시라이 가족이 서로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보시라이는 상무부 부장(장관)을 지낸 뒤 2007년 말 충칭시 서기로 좌천성 인사발령이 나자 임지로 가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가슴 깊숙이 담는다. 랴오닝성에서 알았던 왕리쥔을 불러들여 충칭에서 창훙다헤이(唱紅打黑,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하고 범죄를 척결한다)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인 것도 그 일환이었다.

이번 사건이 던지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외국인으로서 새삼 깨닫는 사실은 중국 사회가 법치(法治)가 아니라 ‘인치(人治) 사회’라는 점이다. 일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법 위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범법 행위마저도 덮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는 궁정 출신이라 머릿속에 법치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사람 죽이는 걸 개미 죽이듯 했다.” 문회보(文匯報) 다롄 주재 기자를 지내고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장웨이핑이 명보(明報)에 한 증언이다. 그는 “중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그들 눈앞에는 인간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그는 보시라이가 불법 광고물을 부착한 농민공을 때려죽인 관리를 처벌조차 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등 살인을 묵인한 사례를 폭로하기도 했다. 보시라이 부부는 다롄 TV 유명 여성 앵커 장웨이제(張偉傑) 실종 사건, 전 다롄시 부시장 위안센첸(袁憲千)의 딸 자살 사건과 깊이 관련됐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장웨이제는 다롄 시장이었던 보시라이의 정부(情婦)로 소문났었다.

구카이라이가 지금까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이 80억 위안(약 1조4400억원)에 달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여기에다 보시라이가 권력 탈취를 위해 군과 언론을 동원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이려 했다는 얘기에 이르면 “이게 과연 어느 나라 얘기인가”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게 바로 ‘G2’ 반열에 올랐다는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름 아닌 사람이 다스리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각종 비리 목록에 ‘보시라이’라는 이름 대신 자리 잡아도 될 만한 정계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자바오 총리는 공직자 재산공개를 몇 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했지만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수많은 ‘보시라이’들이 이에 반발하는 기류 속에서 역풍을 무릅쓰고 강행하기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정통성 확보와 선전 활동을 위해 관영 매체를 동원한다. 중국에서 언론은 지금까지 ‘당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인민을 상대로 한 선전 공작의 주요 수단일 뿐이었다. 법과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자의적 통치에 의해 움직이는 후진적 사회. 보시라이 정국에서 중국 지도부가 절실히 깨달아야 할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당의 목구멍과 혀(喉舌)로 불리는 언론을 두고는 문제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