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바뀌는 대북정책] ‘核게임’ 휘둘리기 그만… 北민생·인권문제 파고든다
입력 2012-04-17 18:57
지난 13일 북한의 로켓 발사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의 대 북한 정책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양국 정부가 30년 이상 북한이 주도적으로 설정해 온 ‘핵·미사일 의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2·29합의나 2007년 베를린 합의처럼 북한의 핵동결 및 사찰 등을 대가로 식량을 지원하는 일괄타결식 거래를 배제하고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은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시간만 낭비한다는 사실을 이번 북한의 도발로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취약한 부분인 주민의 민생과 인권을 직접 겨냥하는 쪽으로 대북 정책의 초점을 옮겨가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은 16일(현지시간)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은 핵, 미사일 등 북한이 설정한 게임에 반응하는 식이었는데 이를 바꿔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이는 북한 내부 문제를 파고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에서 최근 북한 강제노동수용소의 참상 등 인권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도 ‘미사일 한 번 쏘는 돈이면 북한의 6년치 식량 부족분, 옥수수 250만t을 살 수 있다’고 민생문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발상 전환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이른바 ‘게임 체인지(Game Change)’라고 규정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이날 브라질 방문 중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새 지도부가 자신들의 정책을 재평가해야 하며 핵보유국이 되려 하기 전에 자국민을 부양하고 교육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국방분석연구소(IDA)의 오공단 선임연구위원은 “역대 미 행정부가 30년 이상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개입정책과 강경제재 등을 반복했지만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자각과 북한에 대한 염증이 커지며 대북 정책의 ‘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새 접근법의 특징으로 핵·미사일이 아니라 북한체제의 근본 문제를 대상으로 삼을 것, 이를 위해 북 주민들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는 것과 함께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직접 주민에게 제공하는 데 주력할 것 등 두 가지로 요약했다. 오 박사는 지난해 ‘핵폭탄을 물려받은 김정은’이라는 논문에서 “김정은 등 북한지도부는 미국이 아무리 많은 대가를 제공해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유인이 충분하다”면서 북한 주민들의 삶을 겨냥한 대북 정책 전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