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장애인, 로봇셔츠 입고 성큼성큼 꿈의 시대 온다… 보행보조로봇 개발 어디까지 왔나
입력 2012-04-16 19:28
척수마비 환자는 교통사고나 낙상 및 재해 등으로 인해 뇌에서부터 하체로 이어지는 척수가 손상돼 두 다리를 전혀 쓸 수 없다. 누워서 지내거나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 건강은 물론 심리 상태도 좋지 않다. 이들 환자는 걷는 것 자체가 바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우리나라 척수마비 장애인은 10만명 정도. 여기에다 최근 들어 고령화 추세와 함께 급증하는 뇌졸중 후유증 환자들까지 합칠 경우 국내에서 현재 ‘자유롭게 팔다리 쓰기’ 재활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수십, 수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장애인의 날(20일)을 맞아 팔다리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보행보조 로봇 개발 실태를 알아본다.
◇바지처럼 입는 ‘걷기 보조 로봇’ 등장=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재활의학과 원선재 교수는 16일 “최근 다양한 기능의 로봇 신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10년 뒤쯤에는 하반신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척수장애인이 로봇셔츠를 입고 걸을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가장 기대되는 제품 중 한 가지는 장애인이 로봇을 착용하고 직접 걷거나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움직여서 신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종류다.
한 예로 뉴질랜드의 ‘렉스 바이오닉스’라고 하는 회사는 지난해 로봇 모양으로 생긴 보조 다리 ‘렉스’를 개발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5년 동안 꼼짝을 못하던 해이든 앨런이라는 사람이 이 로봇 다리를 착용하고 혼자서 걷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 모습은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보행보조 로봇은 다리 바깥쪽에 보조기를 차듯이 로봇 다리를 장착하고, 휠체어의 팔걸이처럼 생긴 팔 받침 앞쪽에 있는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것으로 작동된다. 로봇 다리를 하반신과 허리까지 붙인 상태에서 벨트로 고정하기 때문에 하반신 장애인이 선 자세에서 로봇 다리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춰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돼 있다.
◇신호 감지 센서를 장착한 로봇 셔츠도 선봬=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로봇이 연구되고 있다.
일본 쓰쿠바대학의 요시우키 산카이 박사팀은 ‘HAL(Hybrid Assistive Limb)’로 명명된 로봇 셔츠를 개발 중이다.
이 셔츠는 신체 골격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을 장애인이 몸에 착용하면 그의 근육에 들어오는 신경의 전기적 신호를 순간적으로 감지해 작동된다. 즉, 착용자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옷을 입으면 파워가 세져 무거운 물건도 가볍게 들 수 있고, 같은 원리로 신체 기능이 약한 장애인이 걷거나 팔을 움직여서 물건을 들게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팔다리 힘을 대신하거나 증폭시키는 보조 기계인 셈. 실험 결과 HAL을 착용하면 팔다리에 힘이 거의 없는 사람도 90㎏에 가까운 물체를 쉽게 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시유키 박사팀은 HAL 제작 기술을 ‘사이버다인’이란 회사에 이전, 사지마비 장애인이나 노화로 인해 근력이 떨어지고 신경도 퇴화된 고령 노인들을 위한 신체활동 보조기로 산업화할 계획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 권익증진연구부 남세현 자립지원팀장은 “허리에 장착된 100볼트짜리 배터리에 의해 작동하는 HAL은 현재 한 번 충전에 (일반적인 활동량으로) 5시간 동안 작동이 가능한 단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이밖에 미국회사 ‘레이시언’이 군사용으로 개발, 상용화를 서두르는 ‘엑소스켈리톤(Exoskeleton·외골격)’도 HAL과 비슷한 종류의 로봇 셔츠다.
◇목발 같은 보조 다리 역할 장치도 나와=그러나 HAL이나 렉스 같은 보행보조 로봇이 실용화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개당 수천만원선의 제작 단가를 낮추고, 부피를 줄여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이스라엘의 공학자 아미트 고퍼 박사가 개발한 보조 다리 ‘리워크(ReWalk)’란 제품은 이런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중간 단계의 보행보조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치는 (허리 이하) 하반신 마비 증상을 겪는 사람이 혼자서 일어나 걷고 계단을 오를 수 있게 해준다.
모터가 달린 다리 지지대, 신경 흐름을 감지하는 센서, 컨트롤 박스, 그리고 충전식 배터리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 이 장치를 착용하면 손목에 찬 컨트롤러(조종기)를 이용해 스스로 서기, 앉기, 걷기, 오르기, 내려가기 등 자신의 하반신 동작을 조정할 수 있다.
다만 이 장치는 (지팡이처럼) 팔로 균형을 잡아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따라서 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국내에서도 재활훈련로봇 개발 성공해 관심=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피엔에스미캐닉스(대표 박광훈)란 벤처기업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연) 로봇융합연구그룹을 꼽을 수 있다.
피엔에스미캐닉스는 ‘워크봇’이란 재활치료용 보행훈련보조 로봇을, 생기연 로봇융합연구그룹은 ‘로빈’이란 척수손상 장애인용 보행보조 로봇을 각각 개발했다.
먼저 워크봇은 스위스 호코마사가 개발한 로코매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상업화한 사지운동 재활치료용 보조 로봇이다. 이 기계는 척수손상 장애인의 팔 또는 다리 관절에 외골격 로봇을 장착하고, 환자 몸에서 보내는 생체신호를 로봇이 감지해 팔 또는 다리를 움직여 근력을 강화해준다.
충남대병원 재활의학과 조강희 교수팀이 하지마비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성능 면에서 로코매트에 뒤지지 않고 척수손상 장애인뿐 아니라 뇌졸중 등으로 손 운동 및 걷기가 불편한 고령 환자들의 재활훈련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생기연 박현섭 로봇융합연구그룹장이 개발한 로빈은 척수마비 장애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언제 어느 각도로 관절을 사용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란 게 특징이다.
박 그룹장은 “로빈의 경우 상체 움직임에 따라 쏠리는 무게를 전자목발과 로봇 발바닥에 부착된 센서가 정밀하게 읽어내 걷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고안돼 있다”며 “올해 하반기엔 뇌졸중 등으로 보행재활훈련이 필요한 편마비 환자들을 도와주는 로봇 시제품을 새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