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신묘년 풍악도첩’ 의문점 풀렸다

입력 2012-04-16 18:53


조선후기 진경산수화를 창안한 겸재 정선(1676∼1759)이 금강산을 답사한 후 남긴 ‘신묘년 풍악도첩(辛卯年 風樂圖帖)’의 제작 경위와 발문에 등장하는 백석공(百石公)의 인적 사항이 밝혀졌다.

서울 가양동 겸재정선기념관(관장 이석우)은 개관 3주년을 맞아 ‘제3회 겸재 학술논문 현상공모’를 실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경화씨의 논문 ‘겸재의 신묘년 풍악도첩-1711년 금강산 여행과 진경산수화풍의 성립’을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씨는 “이 화첩 발문에 나오는 백석공이라는 인물은 겸재와 같은 동네(서울 인왕산 자락)에 살았던 신태동(1659∼1729)의 호로, 같은 시대 문인인 이병연과 여러 차례 금강산을 다녀온 김창흡의 기록 및 교유 관계 등을 추적함으로써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신묘년 풍악도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겸재의 진경산수화 가운데 제작 연도(1711)가 표기돼 있는 최초의 화첩으로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총석정’ ‘시중대’ 등 금강산 풍경을 그린 13점이 수록됐다. 발문에는 1711년에 백석공이란 인물이 금강산을 두 번째 여행했을 때 겸재를 동행시켜 금강산도(金剛山圖)를 제작토록 했다고 적혀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백석공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으나 실제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평생을 겸재 연구에 몰두해온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2009년 발간한 ‘겸재 정선’(현암사)에 “백석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다른 자료의 출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또 처음에는 실경으로 시작했다가 갈수록 개성이 강해지는 겸재의 필치로 보아 그의 금강산 여행 경로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피금정∼단발령∼백천교∼해산정∼문암관∼옹천∼총석정∼시중대 순이 아니라 시중대에서 피금정까지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