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고유환] 경제발전이 김정은의 과제

입력 2012-04-15 18:08


김정은이 북한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추대됨으로써 한반도 절반의 새로운 상속인으로 공인됐다. 선대 수령의 사망과 동시에 후계 수령으로 등극한 김정은이 당·정·군의 수위에 오름으로써 명실상부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됐다. 왕조시대 왕위 계승처럼 권력 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수령제’ 통치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북한 집권층은 지도자와 운명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김정은을 수령으로 옹립해서 기득권을 누리려 한다.

순조롭게 이뤄진 권력 승계

김정은의 공식 승계는 김정일의 승계방식과 과정이 유사하다.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김정은은 같은 권한을 갖는 제1비서, 제1위원장이란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그 자리에 올랐다. 마치 스포츠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수의 등번호를 영구결번 하듯이 전임지도자의 직책을 영구직함으로 추대했다.

김정은의 권력승계 수순은 김정일의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 지난해 말 군 최고사령관직에 올라 군권을 장악한 후 당과 국가의 최고 직책을 잇달아 이어받아 공식 승계를 마무리했다. 김정일이 3년 걸린 공식승계 절차를 김정은은 불과 4개월여 만에 끝냈다. 김정일의 경우 오랜 후계구축 기간을 거쳐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식 승계를 서둘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후계구축 기간이 짧고 전권을 장악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점에서 공식 승계를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새 지도부는 김정은 체제의 조기 공식화를 통해서 권력투쟁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김정은 체제의 내구력과 관련한 외부 세계의 의구심을 불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여부는 북한 내부의 유일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는 군부의 지지 여부와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군의 가장 중요한 자리인 총정치국장에 민간인 출신 최룡해를 임명한 것은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최룡해는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의 주요직을 겸하고 있어 김정은 시대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20대 후반의 김정은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체제가 효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3대 세습을 통해 공고화된 유일체제는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김정은 체제가 효율성을 얼마나 발휘하느냐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를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령복을 대대로 누린다’는 달콤한 말만으론 인민을 끌고 갈 수 없다. 먹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만성적인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인민은 등을 돌릴 것이다. 인민의 불만이 높아지면 야심가가 나타나거나 반체제세력이 조직화될 수 있다.

스위스 유학경험이 있는 김정은을 북한의 다른 지도자보다 개혁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정책 전환을 위해서는 권력의 공고화와 함께 대외관계를 풀어야 한다. 이제 갓 출범한 김정은 체제는 로켓발사로 불거진 국제사회와의 갈등을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

최근에 공개된 김정일의 10·8유훈도 “국제제재를 풀어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새 지도부가 외부세계와 관계설정을 하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할 경우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핵실험과 국지도발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사회와 갈등 풀어야

문제는 미국이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에 마냥 유화정책만 쓸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공화당 매파의 강공이 예상되는 터라 쉽사리 대화를 재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김정은 체제가 로켓발사로 불거진 외부세계와의 갈등을 풀지 못할 경우 북한은 더욱 불량해질 것이다. 북한의 새 지도부에 정상국가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정상국가들의 몫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