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 이후] ‘리더십 한계’ 89일… 한명숙, 화려한 등극 초라한 퇴장

입력 2012-04-13 19:04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결국 낙마했다. 1·15 전당대회에서 제1야당 대표로 화려하게 등극한 지 89일 만이다. 당내 친노 진영에서 그의 사퇴를 막아보려 했지만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명숙의 공과(功過)=한 대표는 1960년대 박순천 여사 이후 제1야당 첫 여성 대표다. 그만큼 국민적 기대가 컸다. 한때 대선후보감으로도 거론됐으나 스스로 ‘킹 메이커’ 정도로 자리매김을 했다.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한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국민을 무시하는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는 승리의 대장정을 선언한다”고 했다. 총선승리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야권의 희망을 분골쇄신의 자세로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 대표는 헌정사상 전국 단위 선거에서의 야권연대를 처음으로 성사시켰다. 새누리당의 강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 맞서 최전선에서 총선을 치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 갖가지 공천 잡음을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한데다 선거운동 기간 중 몇 차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전당대회를 전후해 새누리당을 앞지르기도 했던 당 지지율의 추락을 부르고 말았다. 이는 곧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한 대표는 당분간 백의종군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기 때문에 의정활동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에 대선주자를 제외하면 한 대표만한 간판급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대선정국에선 어떤 형태로든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명숙 누구인가=44년 평양에서 태어난 한 대표는 부모를 따라 월남, 서울에서 자랐다. 정신여중고와 이화여대 불문과를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결혼했으나 남편(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이 결혼 6개월 만에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재야운동가로 변신했다. 70년대 강원룡 목사가 주도한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여성 인권운동을 하다 용공 혐의로 구속돼 2년간 복역했다.

90년대에는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진보성향 여성단체를 이끌며 재야의 맏언니 역할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지내던 한 대표는 2000년 16대 총선 때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지낸 그는 노무현 정부에선 환경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를 지내면서 지명도를 높인 한 대표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선거 판세는 새누리당 오세훈 현직 시장이 압승할 분위기였으나 불과 0.6% 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한 대표는 현 정권 들어 검찰수사와 재판을 받는 수난을 겪었다. 지난 1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신건영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역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어 검찰에 ‘3승’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재판은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측근 심상대 전 사무부총장이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돼 한 대표를 곤혹스럽게 했다. 원래 부드러운 리더십의 소유자였던 한 대표는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철의 여인’으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기철 기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