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장소 가리지 않는 잠, 사회생활이 힘들다… 기면증 원인과 고통, 그리고 치료
입력 2012-04-13 18:26
#취업준비생 김모씨는 대학을 졸업한지 5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부터 시작된 기면증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드는 까닭에 중요한 면접에 응시하지 못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해고를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다른 사람과 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으로 인해 주변사람이 피해를 볼까봐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김씨는 스스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면증이란=기면증은 낮 시간의 과도한 졸림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우리 머리에 있는 시상하부라고 하는 부분에서 정상적인 각성을 유지시켜주는 물질인 히포크레틴(hypocretin) 분비가 결여돼 생기는 질환이다. 주로 중·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졸음과 함께 갑작스러운 무기력증을 수반하기도 한다.
◇국내 기면증 환자, 5년 새 2배 증가=2010년 현재 국내 기면증 환자는 2000여명으로 5년간 약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기면증은 다른 질환에 비해 증상이 확연히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자신이 기면증을 앓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기면증을 앓고 있는 잠재적인 환자 수는 2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다한 수면으로 인해 ‘삶의 질’ 떨어져=기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2010년)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의 환자들이 불규칙한 수면으로 자신의 ‘삶의 질’이 불만족스럽다고 토로했다.
기면증 환자들은 질환으로 인해 ▲사회생활의 어려움(22%) ▲경제적 어려움(19.5%) ▲미래에 대한 불안함(19.5%) ▲건강 악화(19.5%) ▲스스로 자괴감에 빠짐(12.2%) 등을 겪는다고 답했다. 특히 기면증은 청소년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습 능력 저하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 대인 관계를 영위할 수 없다. 기면증 환자가 겪는 고통은 파킨슨병, 간질 환자와 유사한 수준으로 보고 되고 있다.
또한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잠에 빠지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기면증으로 인한 피해를 물어보는 질문에서 약 95%의 환자들이 잠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지장을 받았다고 답했다. 기면증은 특히 단순한 졸림 현상으로 방치했다가는 운전, 기계 조작 중 졸음이 발생해 환자와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2차적 피해의 위험까지 발생시킬 수 있는 만큼 반드시 치료 받아야 한다.
◇기면증의 진단과 치료=기면증의 검사는 밤잠을 검사하는 수면다원검사와 낮잠을 검사하는 반복적 수면잠복기 검사를 통해 진단을 내린다. 정상인의 경우에는 얕은 수면에서 깊은 수면 단계로 바뀐 후 꿈을 꾸는 렘(REM) 수면이 나올 때까지 보통 80∼90분 정도 걸리지만 기면증 환자는 잠이 들고 15분 이내에 렘수면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현재까지 기면증의 완치법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약물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그 증상을 조절하거나 호전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대표적인 기면증 치료제로는 FDA 승인을 받은 약물인 ‘프로비질’이 있다. 이 약제는 수면에 관련된 중추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기면증에 관련된 주간과다수면을 치료하는 세계 최초의 약제다. 메틸페니데이트 등 기존 각성제의 경우 수면 외의 중추에 작용해 의존성·습관성 심혈관계 부작용, 야간수면 방해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반면, 프로비질은 수면에 관련된 중추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이다. 또한 프로비질은 의존성을 유발하지 않고 사용 중단 시에도 금단증상을 유발할 위험성이 적어 그 안전성을 미국 FDA에 승인 받았으며,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신홍범 대한수면의학회 이사(코모키수면센터 원장)는 “국내에만 아직 2만 명 이상의 환자가 자신이 기면증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기면증으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기면증을 치료하지 않고 간과할 경우 사회적·경제적 피해로 인해 삶의 질이 저하될 뿐 아니라 졸음으로 인한 2차 사고로 주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 이사는 이어 “충분한 수면을 취했는데도 주간에 과도한 졸음이 오거나 일반적으로 잠이 들기 힘든 상황에서 잠이 쏟아질 경우 병원을 방문해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수 쿠키건강 기자 jun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