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눈을 달아주는 고백의 방식… 최문자 시집 ‘사과 사이사이 새’
입력 2012-04-13 17:57
최문자(69·사진) 시인은 협성대 총장을 지낸 국문학자이다. 세상에 드러난 직업으로서 총장은 보이지 않는 직업인 시인을 가린다. 그래서 이런 시를 썼는지도 모른다. “대학 총장 하는 4년 동안 자주 악몽을 꿨다/ 내가 나를 넘으면 내가 지워지는 꿈이다/ 한쪽 눈이 지워지고 팔 한쪽이 지워지고 머리카락이 지워지고/ 커튼 뒤에 등뼈만 아직 서 있다/ 꿈속에서 등뼈를 넘지 못했다/ 꿈은 거기서 끝나고 등뼈만 돌아왔다”(‘내가 나를 넘는 꿈’ 부분)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사과 사이사이 새’(민음사)는 가려진 것을 걷어내는 방식으로 ‘고백’이라는 발화의 방법에 몰두한다. “아까부터/ 사과들이 나를 쳐다보네/ 나는 딴 생각 반, 사과 생각 반으로 보는데/ 사과나무는 온 사과들을 다 데리고 나를 보네/ 사과 사이사이에 새가 있네/ 울어 줄 새를 안고 살았나 보네/ 어쩌다 새의 작은 눈알과 마주쳤네/ 새까지 고집스럽게 나를 쳐다보네”(‘시선들’ 부분)
사과 사이사이에 ‘새’가 있다. 이 ‘새’는 사과를 대신해 울어주는 ‘새’, 다시 말해 ‘메신저’이다. 그러나 ‘새’는 실은 사과가 아니라 시인을 대신해 울어주는 ‘메신저’이다. 시란 어차피 시인의 감춰진 고백을 듣는 자리이다. 시인은 무엇을 고백하고 싶었던 걸까. 다음 연을 마저 읽어본다.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네/ 사과가 없어진 나를 보네/ 뻥뻥 구멍 뚫린 나를 보네/ 누구와 누구가 사과를 다 따 갔는지 의심하며 보네/ 내가 놓아버린 사과들을 찾고 있네”(‘시선들’ 부분)
‘사과’는 시인의 상실감을 나타낸다. 잃어버린 과거,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젊음, 잃어버린 자존감이 사과 한 알로, 두 알로, 세 알로 매달려 시인을 보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눈동자를 사과에 달아준 채 사과의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잃어버린 것들에 눈을 달아주는 방식이 최문자 시인만의 독특한 고백의 발화인 것이다. “스커트를 입을 때 생각난다// 그때 그 식물들이/ 꽃말처럼 살고 싶었던 것/ 할머니의 식물은 연둣빛/ 연둣빛은/ 할머니 생각의 덩어리/ 할머니는 식물의 테러리스트”(‘그대의 식물’ 부분)
연둣빛 스커트를 입으며 잃어버린 젊음을 떠올리는 시적 화자는 다름 아닌 할머니이지만 그녀가 연둣빛 스커트를 입기만 하면, 40년 전 청춘시절은 연둣빛을 타고 시인의 일상 세계로 넘어온다. 최문자는 상실된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은 시인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