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월급 이야기
입력 2012-04-13 17:56
만화가 정운경 화백의 대표작이라면 으레 ‘왈순아지매’를 꼽지만 그에 못지않은 작품들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1970년대에 나온 ‘가불도사’다.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그린 성인만화.
그런데 가불(假拂)이 뭐지?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물어봄직한 이 말은, 월급날이 되기도 전에 돈이 떨어진 월급쟁이들이 회사에 어려운 사정 늘어놓고 몇 푼씩 미리 받아쓰던 것을 말한다. 국립국어원편 국어사전에 따르면 ‘봉급을 정한 날짜 전에 지불함’이지만 미상불 머지않아 사전에서도 사라지는 사어(死語)가 될지 모른다. 그 뒤에 ‘임시 지급으로 순화’라는 첨언이 붙어있는데다 신용카드가 보편화된 지금 도대체 쓸 일이 없는 말이고 보면.
신용카드가 뭔지 몰랐던 시절, 월급이 봉투 아닌 온라인으로 지급되기 시작한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가불은 월급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월급 앞에 항상 붙어온 ‘쥐꼬리만한’이라는 관형어가 말해주듯 늘 부족한 월급으로 살림을 꾸려야 했던 가난한 가장들은 월급날이면 가불해서 텅 빈 봉투를 보며 한숨만 내쉬곤 했다.
‘가불하는 재미로 출근하다가/월급날은 남몰래 쓸쓸해진다/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건 남는 건 빈 봉투/한숨으로 봉투 속을 채워나 보자…’ 1964년 최희준이 발표한 가요 ‘월급봉투’ 1절. 남한 사회의 ‘빈곤상’을 북한이 이용할 우려가 있다고 해서 이듬해 금지가요가 되는 얼토당토않은 일도 있었지만 신봉승 작사 김호길 작곡의 이 노래처럼 한 세대 전 월급쟁이 아버지들에 대한 애잔함이 가슴 절절히 와 닿는 노래도 없다.
월급쟁이는 사업가를 부러워하고 사업가는 월급쟁이를 부러워한다지만 월급을 ‘마약’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마약기운이 떨어져 거의 죽어가다가 마약을 맞으면 생기가 넘치는 것처럼 월급도 꼭 같다는 것. 그만큼 중요한 월급 대신 병아리를 일부 공무원들에게 지급한 나라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얘기다.
당국은 가금류 계란 등의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캠페인이라지만 현금 부족을 현물로 메우려는 술책이라는 게 비판자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며칠 전 인천시가 복리후생비를 체불했다고 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거니와 세상천지 월급쟁이들 월급만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