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⑩ 고탄력 검은 유희로의 질주… 시인 김민정

입력 2012-04-13 17:59


고슴도치 아가씨의 유쾌 발랄한 외출기

억압도 원한도 삭제된 1970년대생 대변


김민정(36) 시인은 단거리 육상선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TV로 서울올림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미국의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100m 달리기를 준비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한다. “100m는 순간적이잖아요. 온몸의 근육이 그때 쏟아지지 않으면 세계적인 기록을 낼 수가 없지요. 그때 감각이 아직 저한테 남아 있는 거예요.”

조이너가 1988년 7월 16일 서울올림픽에서 세운 10초49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건 1998년. 다음 해인 1999년 김민정은 시단에 데뷔했다. 달리기와 시는 감각이 열리는 순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닮아있기도 할 것이다.

“자물쇠 단단한 철창 안에서만 잠들 줄 아는 날 내다팔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포수로 그림자를 갈아 입는다 나는 도망치지만 발빠르게 헛돌아가는 외발자전거는 땅속 깊이 층층 계단으로 쌓아 내린 뼈 마디마디를 뭉그러뜨리며 또 다른 사각의 메인 스타디움 안에 발 빠진다 끝도 없이 페달을 감아대는 레이스 끝에 홈스트레치에 접어들자 관중석마다 빽빽이 들어차 있던 나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로 내 나침반을 겨냥한다 어서 어서 속력을 더 내렴, 너만 도착하면 완성된 퍼즐 속에서 우리들 되살아날 수 있을 거야”(‘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도입부)

왜 시에서 아빠가 엄마가 찌그러져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이 걸작이다. “시에서 제가 왜 부모를 뜯어 먹을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뜯어 먹을 게 부모밖에 없었던 거예요. 믿을 수 있는, 걸고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 제 감수성이 반짝반짝할 때 누구부터 시작할 것인가, 라고 고민하다가 부빌 언덕이 부모였던 것이죠.”

김민정의 시가 놀랍도록 그로테스크한 것은 그에게 나쁜 동화적 충동의 과잉을 허용할 만큼 자유분방한 가정환경과 성장기를 마련해준 부모 덕분일 것이다. 김민정의 수사학은 실제적 경험이나 목적 혹은 상징적 비유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텅 빈 수사학인 동시에 문장 표면에 기표들이 넘쳐나는 과잉의 수사학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그는 한국 여성시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여성 선배들이 매달렸던 억압과 원한과 신파가 없다. 그래서 김민정은 힘 센 변종의 시인으로 불린다.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2005)를 받아 본 아빠의 반응에 관해 일기 형식으로 쓴 시가 있다.

“2005년 5월 25일의 詩, 나는야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왜 우리 딸이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야? 꼼꼼히 한번 읽어봐. 말 잘 듣는 아빠는 밑줄을 쫙쫙 그어가며 내 시집 읽기에 몰입했다. 뭔 소린지는 모르겠는데 무진 웃겨, 근데 이거 시 맞아? 재밌으면 그걸로 말씀 끝이야. 하지만 지인들에게 시집 돌리기 재미에 푹 빠졌던 아빠는 얼마 안 가 밤낮으로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걔네들이 뭐라 막 그래. 날더러 집에서 애들은 왜 그리 개 패듯 패냐, 민정이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 남자 경험도 많은 것 같은데 얼른 시집이나 보내지 그러냐, 근데 이거 다 사실이냐…. 그래서 뭐랬는데? 개새끼들, 시도 좆도 모르는 것들이. 히히 잘 했는데 담부터는 이렇게 말해, 그만 씨불대고 너나 잘하세요!”(‘詩, 雜이라는 이름의 폴더’ 부분)


아빠와 딸은 이 대화에서처럼 격의가 없다. 김민정의 시에서는 불안과 공포, 혼미와 착란, 분열의 징후와 심정적 두려움이 삭제돼 있다. 흡사 아이의 그것처럼, 철저하게 유희를 수행하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웃음을 거세하고 차단하는 ‘검은 유희’로 돌변한다. 기존의 가치 평가, 교양과 품위의 강조, 학습된 감각의 획일화 등에 대한 거부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김민정의 시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전위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