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4월 13일] 중보기도할 수 있는 능력
입력 2012-04-12 18:22
찬송 : ‘내 기도하는 그 시간’ 364장(통 48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7∼19절
모든 만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참된 멋과 맛이란 올바른 관계에서 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관계의 능력에 대해 살펴봅시다.
먼저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단절에서 옴을 깨달읍시다.
창조주 하나님과 생명있는 만남이 막힌 인생이란 삶의 근본이 막힌 것으로 이는 가장 큰 불행입니다. 그래서 갈 바를 몰라 방황하며, 마음이 항상 두려움과 불안 가운데서 초조해 합니다(롬 3:9∼18). 사람들을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취미 생활에 힘쓰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내 안에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내 영혼이 하나님과 진실된 사랑을 나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심령 상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여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셨음을 깨달읍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자신의 몸으로 허셨습니다(엡 2:14). 내 죗값으로 인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 대속의 죽음으로 인해(롬 3:25), 인간은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생명의 호흡을 내쉬며, 감사와 기쁨의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 내어주심으로 비로소 인간은 참 용서와 안식과 쉼을 얻게 되었습니다(히 4:10). 이것이 예수님의 중보 사역입니다.
셋째 우리에게도 화목을 위해 중보하는 사명이 주어졌음을 깨달읍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고후 5:18).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중보 사역이 사람들의 심령 속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중보적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 역할은 사실 사명입니다(고후 5:19). 교회를 핍박했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울과 사울로 인하여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는 교회 사도들 사이에서 서로 이해하고 하나될 수 있도록 노력한 아니니아(행 9장),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받고 구원받은 이방인 고넬료와 이방인은 성령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교회 사도들 사이에서 성령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시킴으로 교회가 이방인의 구원받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한 베드로(행 11장), 이방인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하며 하나님과 구원과 화해의 기쁨을 누리게 했던 사도 바울…. 이들은 바로 중보적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갈등을 극복하고 구원과 평화의 기쁨을 극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가고 머무는 곳마다 중보적 기도와 만남, 사랑이 있는 대화 등을 통해, 이 땅 위에 하늘의 평안이 이루어 지도록 노력합시다. 주께서 감당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 하나님, 저희는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립니다. 감사드리며 이제는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위한 중보적 노력을 기울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정곤 목사(당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