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밥상 차려 여당에 바친 한명숙
입력 2012-04-12 18:14
예상을 뒤엎고 민주통합당이 4·11 총선에서 참패했다. 역대 어느 총선보다 야권에 유리한 구도였고, 야권연대도 했지만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민주당 지도부의 오만과 독선, 부적절한 처신, 공천 잡음, 그릇된 상황판단, 말 뒤집기, 부도덕 등이 참패 원인으로 꼽힌다. 패인을 곱씹어 보면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부자만을 위한 MB정권을 심판하자고 호소했지만 네거티브 전략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음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국민 투표를 통해 집권한 MB정권을 군사독재정권 쯤으로 치부한 것 자체가 잘못된 전략이다. 서민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기는커녕 싸움닭을 자처하고 나선 정치인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과거 정권도 자행한 민간인 사찰을 MB정권의 전유물인 양 호도한 것은 정치 도의가 아니다.
결단력 없고 상황판단 못하고
공천 잡음은 어떤가. 한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혁신과 변화, 과감한 인적 쇄신, 소통 등을 강조해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공천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에 비리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임종석씨를 임명하는 오류를 범했다. ‘오만하다’ ‘실망스럽다’는 지적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문성근 최고위원 등이 들고 일어나자 한 대표는 마지못해 임 총장을 하차시켰다. 우유부단함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여성, 노인, 교회를 상대로 막말을 일삼았던 김용민 후보를 대하는 한 대표의 모습은 더욱 한심스러웠다. 이해찬 상임고문을 비롯해 당 안팎에서 지도부를 압박한 시점에 한 대표는 하나 마나 한 입장을 발표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당은 김 후보에게 사퇴를 권고했으나, 김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심판받겠다는 입장입니다.”
여심(女心), 노심(老心), 신심(信心)이 돌아서고 있는 때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거 총책임자의 언행이었다. 김 후보를 출당시켜도 성난 민심이 돌아설지 확신할 수 없는 판에 좌고우면하는 모습은 공당 대표의 자질을 의심스럽게 했다. 민주당이 전략 공천한 김 후보는 오히려 초대형 악재로 작용했다. 자충수도 이런 자충수가 없다.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발언이 17대 총선 결과에 악영향을 끼친 점을 잘 알고 있을 민주당 대표가 취할 자세는 아니었다.
한 대표가 청렴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환경부 장관 때 업자하고 골프 매장에 갔는가 하면 총리 시절에는 업자를 공관으로 불러 식사를 해 도마 위에 올랐다. 주변 인물들의 돈 거래 추문도 끊이지 않는다. 한 대표가 국회의원이던 2007년 여비서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사무실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킹 메이커 역할은 할 수 있을지
급기야 한 대표 측근인 심상대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공천 알선 대가로 1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이 돈 가운데 1000만원은 한 대표 비서실 차장 김모씨에게 건네졌다. 돈을 준 박모씨는 “한 대표와 심 전 부총장을 만나 식사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 대표 측근의 돈 문제가 잊을 만하면 터지는데 어느 유권자가 그의 이미지를 깨끗하다고 하겠는가.
한 대표는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있다.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시중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한 대표가 새누리당을 도왔다는 이야기마저 나돌고 있다. 한 상 잘 차려서 여당에 바쳤다는 것이다. 한 대표를 두고 대권주자가 아니라 ‘킹 메이커’로도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