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가를 찾아서] (16)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입력 2012-04-12 17:54


성전 건축에 소외된 레갑인들 후일 도모하며 나사렛에 모여 살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광야 길로 혼자 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가시기로 작정하여 모세에게 그분이 거처할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8∼9)

그리고 성막과 거기서 사용되는 기구의 제작을 지휘할 자로는 훌의 손자 브살렐이 지명되었다.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출 31:2∼4)

또 미디안에 속하는 족속의 기술자들이 그들의 일을 도왔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삿 1:16)

유다 지파가 베들레헴에 정착하자 겐 족속은 근처 에브라다에 거주했다.

“갈렙(글루배)의 자손 곧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아들은 이러하니 기럇여아림의 아버지 소발과 베들레헴의 아버지 살마와 벧가델의 아버지 하렙이라”(대상 2:50∼51)

여기서 ‘훌의 아들’이란 곧 레갑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다 레갑 가문의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종족이더라”(대상 2:55)

광야에서 ‘하나님의 처소’를 제작한 이 레갑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을 레갑의 지도자로 추대했다. 그러나 이 에브라다의 기술자들은 차츰 유다 왕실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한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삼하 5:11)

두로는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명령한 가나안 족속의 장자 지파이고 그 핵심 세력이었다 (창 10:15). 그러나 다윗은 두로 왕의 호의를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그렇게 해서 두로는 다윗의 칼날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오히려 이제는 두로의 기술자들이 마음대로 예루살렘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문제가 생겼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만든 에브라다의 기술자들은 성전 공사도 당연히 자신들이 주도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부친 다윗을 본받아 가나안 사람들을 공사에 동원했다.

“전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 사람들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오만 삼천 육백 명이라 그 중에서 칠만 명은 짐꾼이 되게 하였고 팔만 명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삼천 육백 명은 감독으로 삼아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대하 2:17∼18)

그뿐 아니라 공사를 총괄하는 기술자도 두로에서 데려왔다.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왕상 7:13∼14)

그렇게 해서 에브라다의 기술자들은 성전 공사에서 소외되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된 것으로 자처한 그들은 다시는 집을 짓지 않으며,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평생 나실인’이 되기로 하고, 솔로몬의 형인 나단을 그들의 지도자로 추대했다. 당시 솔로몬 왕이 끌어들인 두로의 건축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는 가나안 문화가 밀려들어 오고, 결국 솔로몬 자신이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을 섬겨(왕상 1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남과 북으로 찢어놓으셨다. 후일 북왕국의 아합 왕은 두로 왕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들여 그 나라를 바알과 아세라의 나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합의 집을 치려고 예후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레갑의 지도자 여호나답(요나답)은 남과 북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여 통일하기 위해 예후와 손을 잡는다.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왕하 10:15)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으나 예후의 마음이 변했다. 바알과 아세라의 신전은 파괴했으나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는 그대로 둔 것이다. 레갑 사람들은 다시 실망하여 방랑의 길에 나선다. 후일 바벨론의 침공이 있기 전의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레갑 사람들을 성전에 불러 포도주를 마시게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나 성전에 모인 레갑 사람들은 포도주 마시기를 거부했다.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렘 35:8∼10)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명령을 거부한 레갑 사람들을 칭찬하신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렘 35:19)

요나답을 아들로 삼은 ‘레갑’은 누구였을까? 레갑은 ‘기병대’라는 뜻이다. 일부 학자는 ‘엘리야’를 지목하기도 한다. 그의 옷이 기병대의 복장 같기 때문이다.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왕하 1:8)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계보에서 ‘요남과 엘리아김(눅 3:30)’을 ‘요나답과 엘리야’로 추정해 볼 수 있고,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 850명을 진멸할 때에도 요나답의 레갑 사람들이 나섰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쨌든 BC 597년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잡혀갈 때 이들 기술자들도 끌려간다.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4:14)

바벨론에 끌려간 기술자들은 그곳의 공중 정원 건설과 운하 건설 등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계보에는 양쪽에 모두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마 1:12)

그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 누가복음에도 등장한다.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눅 3:27)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고냐는 아들 스알디엘을 레갑 집단에 들여보냈을 것이다. 스알디엘의 뒤를 이어 건축 기술자가 된 스룹바벨은 유대인의 귀환 때 예루살렘에 돌아와 비록 솔로몬이 건축한 것보다 초라하지만 성전을 재건한다. 그러나 다시 500년이 지나 BC 20년 이두매 출신 헤롯은 유대 왕이 되어 스룹바벨의 성전을 철거하고 더 웅장한 규모의 성전을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BC 4년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했던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2:23)

그러나 구약 성경 어디에도 그런 예언을 한 선지자는 없고 ‘나사렛’이란 지명도 나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그 하나는 나사렛 사람 즉 ‘나조라이오스’를 네첼 곧 이사야서의 ‘가지(사 11:1)’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칼뱅은 이것을 ‘나지라이오스’ 즉 ‘나실인’과 관련시켜 해석했다.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 하며”(민 6:2∼3)

그러나 스가랴는 이 두 가지를 다 포함시킨 예언을 남겼다.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슥 6:12)

싹이란 곧 ‘네첼’이고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기술자 집단인 레갑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 ‘평생 나실인’이 되기로 결심한 레갑 사람들이 언젠가는 자신들의 손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리라고 다짐하며 모여 살던 장소가 나사렛이 아니었을까? 나중에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여 죽이려 했던 것도 그 ‘포도주’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예수께서 포도주를 마신 이유는 포도주를 마시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던 레갑 사람들의 죄를 자신의 피로 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의 제자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나사렛 사람’들이고 ‘레갑 사람’들이 된 것이다.

김성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