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사랑의 늑대
입력 2012-04-11 18:43
아들 로이가 네댓 살쯤 됐을 때 일이다. 다른 날과는 달리 거실에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굉장한 것을 발견했다는 듯이 웃으면서 “엄마, 나 이제 생각만으로도 놀 수 있어!”라고 말했다. 블록쌓기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구나 하고 인식한 것이다. 그 이후로 내가 놀이터에 데리고 나갈 수 없거나, 혼자 장난감 없이 놀아야 할 때는 머릿속으로 재미를 만들어내며 놀았다. 갑자기 혼자 빙그레 웃거나 하면서 말이다.
어린아이만이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이야기의 블루 프린트를 그려보고, 어떤 것은 머릿속에서만, 어떤 것은 현실에서 실행해보면서 놀이를 완성시킨다. 오늘 저녁은 무엇이 맛있겠다 생각하는 것처럼 금방 이루는 것도 있고, 10년 뒤 이러한 집을 사야지 하는 것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 삶의 여정은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초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 마음이나 머릿속 환경은 어떠한 것일까.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마음에는 두 가지 동물이 산다고 한다. 증오의 늑대와 사랑의 늑대이다. 증오라고 표현된 늑대는 두려움, 외로움, 공포, 불안, 단절 등을 좋아한다. 사랑의 늑대는 평화, 부드러움, 이해, 공감, 화해 등의 성격이다. 이 두 늑대는 우리 스스로 어떤 쪽에 먹이를 주는지에 따라 성장한다고 한다.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만 만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이 많다. 반면 모든 사람이 친구이고, 밝고 신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대체적으로 그런 기분 좋은 삶의 이야기들이 많다. 각자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놀이는 혼자서 빙그레 웃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랑의 늑대만 활성화하여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살다보면 그렇게 하기가 참 어려운 일이다. 두 늑대는 인간의 진화상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증오의 늑대가 나빠 보이더라도 완전히 없애거나 부정할 수가 없고, 그 부분이 없이는 자연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증오의 늑대 또한 우리들의 꼭 필요한 일부였기에 사랑의 늑대가 더 크게 돌봐줘야 할 부분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 말씀하셨다.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내가 본 어린아이는 머릿속 놀이를 할 때 늘 빙그레 웃었다. 사랑의 늑대 쪽이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사랑의 늑대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로 우리 인생을 채우는 연습을 하자. 이 세상 70억명의 마음속에 사랑의 늑대 친구들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워서 증오의 늑대와 이야기를 만들겠는가?
임미정(한세대 교수·하나를위한음악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