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보수 선택한 4·11 민심

입력 2012-04-12 02:28

어제 치러진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원내 제1당 지위를 지켰다. 새누리당은 100석도 얻기 힘들고,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측이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다. 새누리당의 승리는 서울에서 처참하게 졌지만, 영남은 물론 강원과 충청·경기지역에서 선전한 결과다.

정권 말기에 실시되는 총선은 여당이 불리하기 마련이나 유권자들이 이번엔 왜 새누리당에 많은 표를 주었을까. 아리송한 대목이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옛 한나라당이 패배한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 박희태 국회의장의 ‘돈봉투’ 파문,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후폭풍 등 대형 악재가 잇따르면서 선거는 해보나마나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투표함을 열어보니 새누리당은 건재했다. 그 이유는 새누리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민주당의 실책 때문일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새누리당이 반사이익을 봤다는 얘기다.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에 많은 표를 준 데에는 나라 안팎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이 느닷없이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 카드를 들고 나와 국제사회와 정면 대결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한반도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경제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맞물려 불투명한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국가 부채가 420조7000억원으로 전년도보다 28조5000억원 늘었음에도 여야는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을 내놓아 국가 재정상태는 악화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치권부터 손을 맞잡으라는 유권자들의 요구가 분출된 것으로 본다. 오는 12월 대선이 예정돼 있어 쉽진 않겠지만, 여야가 정략을 버리고 국익을 추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총선 민심에 부합한 길이다.

새누리당은 총선 승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선전했지만, 서울에서의 완패를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야당이 줄기차게 제기한 MB정권 심판론의 바람이 대한민국 수도에서 거세게 불었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은 현 정부 실정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되새겨야 한다.

자체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친 민주당은 오만을 버려야 한다. 1·15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를 다시 꾸렸으나, 공천만 하면 당선될 분위기라는 자만에 빠져 총선후보 공천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계속됐다. 게다가 좌파 성향이 강한 통합진보당과의 선거 연대에 급급한 나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도 말을 바꿔 반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나꼼수’를 선거에 활용하려 구속 중인 정봉주 전 의원 요구를 수용해 나꼼수 멤버인 김용민씨를 검증 절차 없이 정 전 의원 지역구에 전략 공천했다가 선거 막판 김씨의 저질 발언이 불거져 곤혹을 자초했다. 한명숙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의 오락가락한 리더십이 유권자들을 분노케 한 것이다. 민주당은 각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은 지금까지의 노선을 수정하는 게 옳다. 선거과정에서 천명한대로 ‘이명박 정부의 모든 것을 뒤집겠다’며 각종 특검이나 국회 청문회를 힘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함이 요구된다.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를 지나치게 의식해 종전처럼 강공으로 나아가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총선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투쟁보다 대화로 정국을 풀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다.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의 교훈도 되새겨야 한다. 나꼼수는 반(反)MB 정서에 편승해 정치에 기웃거리지 말고,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당과의 선거연대 덕분에 10석 이상을 확보했으나, 올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이정희 공동대표의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 여론조사 조작 의혹 파문도 변수였으나, 무엇보다 지나친 종북 성향에 대한 유권자들의 우려가 표를 통해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 주사파인 경기동부연합이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벌어졌고, 탈북자를 비롯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선 함구하면서 김정은 정권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이런 의구심을 해소하지 않고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요원하다고 하겠다.

투표율은 18대 총선 때보다 높은 54.3%를 기록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여야는 각성하고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올 총선에서 지역주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일부 야당 후보들이 부산에서 당선되기는 했으나 호남에서 새누리당 당선자는 없었다. 석패율 제도 도입 등 선거제도 개선안을 여야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이번 선거에서 재확인된 세대간 대결도 우리 공동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