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입력 2012-04-11 18:30
축구 선수, 야구 선수 등 스포츠 선수들은 골을 넣거나 홈런을 칠 때 다양한 세리머니를 보여준다. 또한 이런 세리머니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바둑 프로기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프러포즈를 할까?
최근 바둑계의 스타 최철한 9단과 윤지희 3단이 결혼을 발표했다. 오랜 시간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동료기사이자 연인으로 함께했던 두 기사는 6월 2일 백년가약을 맺는다. 얼마 전 세계대회를 앞두고 최철한은 “세계대회 우승컵으로 정식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천원전 우승 이후 연이은 부진으로 BC카드배 64강, 중국 바이링배 64강, 춘란배 16강 탈락으로 긴 슬럼프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결혼식 전까지 세계대회는 없다. 하지만 비록 세계대회는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기대할 수 있는 원익배 십단전이 남았다. 3번 승부로 펼쳐지는 십단전 결승에서 최철한은 강동윤 9단과 대결했다. 현재 랭킹은 강동윤이 3위, 최철한이 4위다.
지난 3일 시작된 1국은 최철한이 시종일관 상대의 공격을 받았지만 꿋꿋하게 견뎌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1국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최철한은 “모든 걸 걸고 이번 원익배 십단전에서는 우승을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 9일 2국이 속개됐다. 3번 승부는 1국을 이긴 기사가 70%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만 2국을 놓칠 경우에 상황은 급반전된다.
승부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의 대국장은 늘 같은 승부의 현장이지만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더 무겁고 더 경직되는 느낌. 하지만 2국의 내용은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최철한은 초반을 두텁게 이끌어갔고 결정적인 중반전 전투에서도 흔들림 없는 수읽기로 상대를 압도했다. 2국은 157수, 단명국으로 끝이 났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어떤 승부사가 이기기를 바라지 않겠느냐마는 최철한의 간절함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이날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결승전을 바둑TV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초조하게 지켜보던 예비신부의 얼굴이 환해진다.
최철한의 우승이 결정된 이후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인터뷰 도중 예비신부는 깜짝 등장을 하며 그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그동안 세계대회 우승컵으로 정식 프러포즈를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오히려 더 힘들었을 그의 마음을 알기에 도리어 프러포즈를 하려고 준비를 했다. 누군가의 옆을 지켜준다는 것은 항상 어떠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견뎌나갈 수 있는 두터움으로 감싸주는 것과 같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