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다 내려 놓읍시다

입력 2012-04-11 18:16


열왕기하 5장 1∼14절

지금의 시리아인 아람 나라에 왕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아만이라는 사람으로, 아람을 구원한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그가 명성을 드날릴 때 천형이라는 나병에 걸렸습니다. 백약이 무효요, 고명한 의원도 무색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자기 병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내려놓았습니까?

첫째,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은 몸종의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선지자 앞에 계시면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라는 말에 솔깃했습니다. 또한 종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에 대노하며 떠나다가 종들의 간언에 마음을 돌이켜 그대로 순응했습니다. 그동안의 자존심으로는 소녀나 종의 말이 귓가에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병이라는 불치의 질병에 그는 더 이상 교만이나 자존심만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둘째, 생각을 내려놓았습니다.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였을 때 나아만은 노하여 말하기를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와서 안수를 하여 나병을 고칠까 기대를 했다”며 화를 내며 돌아갔습니다. 나아만이 은근히 기대했던 것은 “장군님! 이 누추한 곳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빨리 안방으로 드소서” 하면서 상처 부위를 정성껏 보살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입니다. 그것은 자기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경청의 부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만 옳고, 자기 생각만 전부라고 여깁니다. 자기 생각 외에는 다 잘못되었다고 여깁니다. 남의 입장이나 처지나 환경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통의 부재가 됩니다.

셋째, 신분을 내려놓았습니다. 나아만이 이제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요단강에 몸을 잠그기 위하여 먼저 옷을 벗었을 것입니다. 옷은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 옷에는 계급과 훈장이 무겁게 달려 번쩍거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다 벗어야 합니다. 그는 지금껏 올라가는 일만 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이제 내려가는 것입니다. 병든 몸을 고치려면 내려가야 합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은혜의 물도 그렇습니다. 낮아질수록 많이 고입니다.

넷째, 조급함을 내려놓았습니다. ‘일곱 번 몸을 잠그니’라고 했습니다. 한두 번 물속에 들어갔을 때 병이 고쳐질 조짐이 보인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 번, 네 번을 거듭했을 때도 역시 특별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속았다는 기분으로 실망하고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때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한국 사람은 너무 조급한 것이 탈입니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습니다.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부끄러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처럼 사회적 정치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적도 드뭅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내가 조용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전부를 내려놓을수록 의외로 일은 쉽게 풀립니다.

전갑재 목사 (공주중앙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