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마다 쉼표, 눈길마다 느낌표! 길 위의 행복… ‘부산 해파랑길’

입력 2012-04-11 17:52


부산 오륙도는 남해와 동해의 경계이자 해파랑길의 출발점이다. 해파랑길은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란 뜻.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688㎞를 잇는 국내 최장 트레일로 부산 구간은 약 57㎞.

오륙도는 밀물 때 5개의 섬으로 보이다 물이 빠지면 6개의 섬으로 보이는 바위섬.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더욱 유명해진 오륙도는 항구도시 부산의 상징이자 고향 떠난 부산 사람들의 노스탤지어.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대신 유람선이 수시로 뱃고동을 울리며 봄 바다를 항해한다.

등대가 아름다운 오륙도를 뒤로 한 해파랑길은 유채꽃이 아름다운 언덕을 올라 솔향 그윽한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길은 고즈넉한데다 해안절벽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소나무 사이로 스며든다. 해파랑길은 흙길인데다 적당히 오르내려 노약자가 걷기에도 부담이 없다.

바닷가 절벽에 궤를 쌓아놓은 형상의 농바위와 바다낚시터로 유명한 치마바위를 지나자 이기대(二妓臺)가 나온다. 이기대는 임진왜란 때 취한 왜장을 껴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순국한 두 기생이 묻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기대 일대의 바위 해안은 거대한 공룡의 발가락처럼 생겼고 그 사이로 들고나는 파도 소리가 공명현상을 일으켜 우레처럼 장엄하다.

자갈해변과 천연동굴, 그리고 6500만 년 전의 울트라사우르스 공룡 발자국이 새겨진 이기대 해안에서는 바다 건너 광안대교와 해운대 동백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큰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쳐 부서질 때는 영화 ‘해운대’의 쓰나미 장면이 오버랩될 정도.

이기대 해안은 ‘산의 동쪽 끝자락’이라는 뜻의 동생말에서 끝이 난다. 남천항과 광안대교, 그리고 광안리해수욕장을 거쳐 수영강을 건너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장소로 유명한 요트경기장. 다시 바다로 나온 해파랑길은 오륙도와 함께 부산을 상징하는 동백섬을 한 바퀴 돈다.

동백섬은 원래 섬이었지만 오랜 세월 퇴적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됐다. 신라의 고운 최치원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바다와 동백숲이 어우러진 이곳을 찾아 감흥에 젖어들었다. 섬에는 최치원이 해운대(海雲臺)라는 세 글자를 새겼다는 석각과 황옥공주 전설의 주인공인 인어상, 그리고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누리마루 APEC하우스 등이 있다.

이기대 해안과 바다 건너 미포의 중간쯤에 위치한 동백섬은 해운대와 광안리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 미포의 해안 끝선과 달맞이 언덕, 바다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 80층이 넘는 고층건물들로 이루어진 마린시티, 그리고 오륙도 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여름에 100만 인파가 몰리는 해운대해수욕장을 가로지른 해파랑길은 파라다이스호텔 앞에서 철길 건널목을 건너 벚나무와 해송이 어우러진 달맞이길로 들어선다. 벚꽃이 활짝 핀 달맞이길을 오르던 해파랑길은 이내 한적한 오솔길인 문탠로드로 접어든다. 문탠로드는 대한팔경의 하나인 해운대 달맞이언덕에서 달빛의 기운을 받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산책로. 문탠은 선탠(Suntan·일광욕)과 대비시켜 만든 말.

와우산 고갯길과 바닷가 동해남부선 철로 중간에 위치한 2㎞ 길이의 문탠로드는 키 낮은 조명등을 설치해 달밤에도 산책이 가능하다. 솔향 그윽한 숲 사이로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 좋은 문탠로드는 철길과 바다와 숨바꼭질을 하며 청사포를 향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갤러리와 커피숍들이 줄을 이은 문탠로드 위쪽의 달맞이 고갯길은 동양의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리는 곳으로 야경이 황홀하다. 아름드리 벚나무 너머로 색색의 불을 밝힌 해운대해수욕장과 동백섬, 그리고 광안대교가 달력그림처럼 펼쳐지고, 이기대 해안이 끝나는 곳에서는 오륙도 등대가 깜빡 깜빡 불을 밝히며 향수를 자극한다.

문탠로드 끝에 위치한 청사포는 기찻길과 등대가 어우러진 아담한 포구. 파도에 자갈 구르는 소리가 마치 천군만마가 행진을 하듯 웅장하다. 청사포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 해파랑길은 조붓한 해안산책로를 걸어 구덕포로 향한다. 미포에서 청사포를 거쳐 송정해수욕장이 위치한 구덕포까지 포구 셋을 연결한 4.8㎞ 길이의 해안산책로 이름은 삼포해안길.

부산의 남쪽 해변과 달리 동쪽 해변은 한적한 어촌의 연속이다. 해파랑길은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해동용궁사에서 북쪽으로 4㎞ 떨어진 기장군 대변항에서 멸치 굽는 냄새에 홀린다. 대변항은 전국 멸치 어획고의 70%를 차지하는 포구로 요즘은 봄 멸치잡이가 한창이다.

새벽에 나갔던 멸치배가 들어오는 오후가 되면 포구는 갑자기 부산해진다. 멸치잡이 배가 포구에 닿는 순간 아낙들이 그물 양쪽 가장자리를 잡아당겨 주면 어부들의 탈망작업이 시작된다. 탈망은 그물을 털어 멸치를 모으는 과정. 비옷으로 무장한 어부들이 가락에 맞춰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면서 그물을 당기며 멸치를 털어낸다.

그물이 한 번 펼쳐질 때마다 은색 멸치가 비늘을 번쩍이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후드득 떨어져 산처럼 쌓인다. 아낙들이 배 주위로 몰려와 부둣가 밖으로 떨어지는 멸치를 플라스틱 대야에 잽싸게 주워 담는다. 갈매기 떼도 멸치를 먹기 위해 하얗게 날아든다.

영화 ‘친구’ 촬영지를 지나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해안도로가 끝나는 곳에 고산 윤선도가 6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두호마을이 나온다. 골목길이 정겨운 두호마을의 바닷가 언덕에서 해파랑길은 이국적인 풍경의 작은 성당과 등대를 만난다. 황금색 갯바위에 세워진 성당과 등대는 드라마 ‘드림’의 촬영세트장.

걸음걸음마다 쉼표와 느낌표를 찍어온 해파랑길은 두호마을에서 바다와 헤어져 기장읍내를 에두른다. 그리고 부산 최북단에 위치한 임랑해수욕장에서 사실상 마침표를 찍는다.

부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