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4·11] ‘저질 막말’에 30~40대 여성·노인표 등돌렸다
입력 2012-04-12 01:46
19대 총선에 임한 민심은 여에도 야에도 압승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8개월 앞둔 18대 대선 전초전을 보여줬다. 역대 대선에서 볼 수 있는 동서현상, 즉 동과 서의 민심이 두 동강 났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에서도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합군에 맞서 선전한 선거로 평가된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말 당의 구원투수로 나설 때까지만 해도 100석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고,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후보 단일화란 복병까지 맞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예상을 뒤엎고 과반에 육박하는 원내 1당에 우뚝 서면서 실질적인 승리를 일구는 이변을 연출해냈다. 야권연대의 정권심판론이 공명(共鳴)을 얻지 못한 반면 선거 막판 ‘어린’ 후보의 막말에 ‘점잖은’ 어른들이 잔뜩 화가 나면서 보수표 결집을 견인해 낸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의 직접적인 승인은 누가 뭐래도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진행자인 민주당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이 예상보다 훨씬 큰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의 성적 비하, 노인 폄하, 기독교 모욕 발언 시리즈는 여성과 노인은 물론이고 1200만 크리스천들의 신성(神聖)을 자극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개표 결과 새누리당은 텃밭인 대구·경북과 부산을 제외한 울산·경남에서 18대 총선 때보다 의석을 더 많이 얻은 데 더해 강원과 충북까지 휩쓸었다. 18대 총선 당시 민주당이 강원과 충북에서 선전했던 것에 비하면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표심이 김 후보의 막말 논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경우도 김 후보에게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고 상당수 지역구에서 개표 완료 직전까지 승패를 알 수 없는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김 후보의 막말 파동이 야당 지지 30~40대 여성들을 많이 돌아서게 한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막말 파문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탄핵 역풍으로 최대 200석까지 얻을 것으로 관측됐던 집권 열린우리당이 정동영 당의장의 노인폄하 발언 때문에 겨우 과반 의석(153석) 확보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사안의 심각성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한명숙 대표는 “김 후보의 막말 발언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사과는 했지만 김 후보의 사퇴 거부를 묵인했다.
이 같은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는 개혁공천 실패, 야권연대에 따른 ‘한 지붕 두 가족’의 혼선과 결단력 부족, 나꼼수와 통합진보당의 눈치를 보는 듯한 행태 등에서 번번이 노출됐다. 이로 인해 정권 말 레임덕이 심화되는 시점에 서민경제난, 민간인 불법사찰,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DDoS) 공격, 대통령 측근비리 등 여당의 대형 악재를 호기로 잡고도 승리를 이끌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는 민주당이 마치 벌써 집권한 양 오만하다는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새누리당의 ‘거야 견제론’이 야권의 ‘정권 심판론’을 제압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야당이 MB 정부를 향해 정권심판론에 목청을 높이는 사이 지난 4년간 ‘여당 속의 야당’ 이미지를 굳혀온 박 위원장은 ‘과거와의 단절’을 외치면서 12월 대망론(大望論)으로 보수표를 결집해낸 셈이다.
하지만 야권은 ‘2040세대’를 중심으로 활성화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선거 당일 투표율을 끌어올린 덕을 보면서 체면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투표율 추이를 보더라도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투표 인증샷이 SNS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투표율의 상승세가 뚜렷이 나타났다. 특히 서울의 경우 전국 평균 투표율(54.3%)보다 1.2%가 높은 55.5%를 기록했다. 이는 서울의 야성(野性) 유권자들의 발길을 투표장으로 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17대 총선에서 서울의 투표율은 62.2%로 전체 투표율 60.6%보다 1.6% 포인트 높게 나타나면서 진보 진영 열린우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반면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투표율은 전체 투표율 46.1%보다 0.3% 포인트 낮은 45.8%에 그치면서 당시 보수 한나라당의 승리를 안겨줬다.
정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