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조용래] 잔치 끝나고 ‘소’ 키울 일만 남아
입력 2012-04-11 18:35
“한국경제의 성과와 전망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게 문제다”
잔치는 끝났다. 하지만 19대 총선은 정치인들만의 잔치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나마 이번 총선이 처음으로 저출산·고령사회 관련 정책을 쟁점으로 삼았다는 점은 평가할 대목이다. 문제는 저출산·고령사회를 대비한 정부지출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지출재원 마련에는 좀 더 치밀한 궁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부 지출을 효율적으로 늘리는 것 이상으로 지속가능한 지출구조 구축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야가 내놓은 정책은 돈 벌 일보다 돈 쓰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는 느낌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치러지는 총선은 정권을 담보로 하는 정책 대결로 가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소’를 어떻게 더 잘 키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겨우 거론된 것이 서민경제 활성화, 청년실업 해소, 일자리 창출 등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속적인 성장이 전제되지 않으면 빈 수레의 외침으로 끝나거나 당장 지출을 늘려 반짝 성과를 내고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책이 그랬던 것처럼.
원인은 어디 있을까. 우선 표심을 잡겠다는 유혹이 강했을 터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정치권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 한국 경제의 성과 내지 향후 전망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실 한국의 경제적 성과는 대단하다. 식민지국가에서 단기간에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2010년 주요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들의 성공모델로 떠올랐다. 무역규모는 세계 9위에 올라섰으며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까.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지금까지의 성과에 취해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추진하지도 못한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자랑스럽게 거론되는 세계 9위 무역대국의 내용부터 따져보자. 예컨대 무역대국 일본은 2005년 처음으로 무역수지보다 소득수지 흑자 규모가 더 커지는 상황과 관련해 ‘2006년 통상백서’에서 무역입국을 넘어 투자입국을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저출산·고령사회로 인한 노동력 감소, 경제활력 위축 등을 감안할 때 추구해볼 만한 방향이다.
무역수지 흑자는 그 나라의 제조업이 거둔 성과이나 소득수지는 기왕에 벌어서 축적해둔 외화로 해외자산을 늘려 투자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 구미 선진국들은 무역수지보다 소득수지를 더 중시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경제학자 크라우더는 각국의 국제수지구조를 채권국(소득수지 흑자)인지 채무국(소득수지 적자)인지, 자본수입국(자본수지 흑자)인지 자본수출국(자본수지 적자)인지를 기준으로 ‘경상수지발전6단계설’을 역설했다. 자본수지 적자는 경상수지 흑자와 연계돼 있고 소득수지 흑자는 장기적으로 대외순자산(순국제투자 잔액·NIIP)이 늘어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1∼6단계는 미성숙한 채무국, 성숙한 채무국, 채무 변제국, 미성숙한 채권국, 성숙한 채권국, 채권 감소국인데 선진국일수록 여섯째 단계로 접근한다. 2011년 말 현재 한국은 겨우 셋째 단계를 벗어날까 말까다.
경상수지가 1998년 이후 14년 연속 흑자(자본수지 적자)를 기록 중이고 소득수지는 규모가 줄어들고는 있으나 여전히 적자다. 지난해 주식·채권투자 등을 포함한 NIIP는 -971억 달러다. 무역대국은 맞지만 대외순자산은 아직 적자상태다. 한국은 겨우 빚 갚고 제 앞가림하는 수준이다.
재빠르게 성장을 이뤄 월급은 좀 받게 되었으나 그 기간이 짧아 벌어놓은 게 별로 없으니 목돈을 쓰자면 부담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같은 월급이라도 10년 받아온 사람과 겨우 1년밖에 못 받은 사람의 씀씀이가 같을 수 없다. ‘소’ 키우는 데 더 열심을 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아직도 배가 많이 고프다. 그런데 올 12월엔 대선이 또 기다리고 있다.
조용래 카피리더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