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인권사각지대의 장애인들
입력 2012-04-11 18:35
‘국가와 사회는 헌법과 국제연합의 장애인 권리선언 정신에 따라 장애인 인권을 보호하고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을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1998년 12월9일 선포된 장애인 인권헌장 서문의 일부다. ‘장애인은 소득, 주거, 의료 및 사회복지 서비스 등을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2항),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분리, 학대 및 멸시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누구든지 장애인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여서는 안 된다’(9항)는 내용도 있다. 장애인도 사람대접 받으면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영화 ‘도가니’에서 확인된 것처럼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여전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학생 연두와 유리, 민수가 용기를 내 자신들을 폭행한 이들을 고발한 이유 역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장애아들이 당한 인권유린 상황이 적나라하게 폭로되자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놀라움, 인면수심의 죄를 지은 이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분노, 그동안 장애아들에 무관심했던 데 대한 자괴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어디에선가 고통 받는 장애인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가 ‘도가니’ 파문을 계기로 200개 장애인생활시설 이용 장애인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해 보니 39개 시설에서 59건의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가 드러난 것이다.
이들보다 죄질이 더 고약한 경우가 최근 적발됐다. 전북 군산에서 지적 장애인 100여명을 유인해 여관에 감금한 뒤 양식장과 어선에서 노역시킨 뒤 30년 간 임금을 가로챈 일당이 붙잡힌 것이다. 28년 동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강제노동에 시달린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 명의로 사망·상해 보험에 가입하면서 자신들을 보험금 수령자로 기재해 상해 보상금을 가로채기도 했다고 한다.
군산시는 장애인 감금 장소로 활용된 여관을 폐쇄조치 했다. 하지만 ‘도가니’에서 묘사된 것처럼 지자체 공무원이나 경찰이 방조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대(代)를 이어 장애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다니 하는 말이다. 철저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차제에 도서지역 인권 유린실태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도 벌여야 할 것이다.
오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기 전에는 누구의 인권과 자유도 안전하지 않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