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남편 염산 테러로 자살…분노의 파키스탄

입력 2012-04-10 20:15

전 남편에게 염산 테러를 당한 후 38번이나 수술대 위에 올랐던 한 파키스탄 여성이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유력 정치가문 출신의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가난한 집안 출신의 피해자는 정부로부터 전혀 보호 받지 못했다. 이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염산 테러는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은폐되고 있다. 한 여성의 죽음이 파키스탄에서 여성인권과 정의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0대에 소녀가장이 된 파크라 요누스는 홍등가에서 댄서로 일하다 명문 정치가의 아들 빌랄 카르를 만나 그의 네 번째 부인이 됐다. 그러나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과 욕설을 견디지 못해 이혼한 후 친정으로 도망쳤다. 2000년 5월, 카르는 한밤중에 요누스를 찾아와 자고 있는 그녀에게 염산을 부었다. 순식간에 입과 코와 귀가 녹아버렸고, 얼굴이 뭉그러졌다. 입에 겨우 빨대 하나를 꽂아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상은 요누스의 편이 아니었다. 카를의 아버지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펀자브주 주지사를 역임했으며 거대 농장의 소유주다. 그의 사촌은 현직 외무장관이다. 그는 거대 권력에 기대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동안 요누스는 38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고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치료를 받던 요누스는 지난달 17일 6층짜리 아파트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 33세였다. 그가 생전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고국 파키스탄에 시신으로 도착하자 파키스탄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카를의 아버지와 이혼한 후 요누스를 지원해 온 테미나 두라니는 “만약 그녀가 정치인이나 장군의 딸이었으면 이런 일을 당했을까. 파키스탄에서 홍등가 출신 여성을 위해 싸워줄 사람은 없다”며 “이 사건은 이 나라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처벌을 피해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탄식했다.

염산테러피해자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파키스탄에서 약 150명이 염산테러를 당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다. 가해자는 대부분 피해자의 남편이나 구애를 거절당한 남성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어려운 형편과 성형기술이 부족한 의료 환경 때문에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평생을 숨어 지낸다.

피해자와 인권단체의 노력으로 파키스탄은 지난해 염산 테러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가해자에게 최소 14년의 징역형과 벌금 1만1100달러(약 1260만원)를 물리기로 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