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시편] 부활의 신비
입력 2012-04-10 18:19
부활은 신비다. 부활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신뢰해야 할 사건이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 부활의 신비는 죽음의 신비다. 부활이 있기 전에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부활의 열매도 없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부활의 뿌리는 십자가의 죽음에 있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었다. 십자가 안에 부활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부활을 보셨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셨다. 죽음 속에서 다시 살아남을 보셨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보여준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부활의 신비는 변화의 신비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변화되어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형상은 이전과 같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자국과 옆구리에 창자국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상흔(傷痕)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은 더 이상 이전의 몸이 아니었다. 부활 전의 예수님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았다. 그렇지만 부활 후에 예수님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았다. 제자들이 모여 있던 방의 문이 닫혀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서 홀연히 임하사 평강을 빌어주셨다(요 20:19). 또한 순식간에 그들 곁을 떠나셨다. 부활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셨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음식에 매여 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렇지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부활이라기보다 소생이다. 그의 소생은 예수님의 부활과 다르다. 나사로는 소생했지만 결국 다시 죽었고, 그의 몸은 흙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달랐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간 공간을 초월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땅의 지배를 받지 않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모신 우리는 부활을 살아야 한다.
유진 피터슨은 우리에게 ‘부활을 살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갈 2:20).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엡 2:6).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신비다. 우리는 살았지만 죽었고, 죽은 것 같으나 영원히 산 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신비 속에서 날마다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LA새생명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