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에 발진·눈 충혈 증상 ‘후천성 심장질환’ 독감 닮은 가와사키병… 아이들 위협
입력 2012-04-09 17:50
“감기를 심하게 앓는 것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아이의 심장혈관에 꽈리 모양의 피 주머니(관상동맥류)가 생겼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두 돌이 갓 지난 아들이 올해 초 이름도 생소한 ‘가와사키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석 달째 치료 중이라는 박모(35·여·서울 신정동)씨의 사연이다. 박씨 아들은 갑자기 심한 열이 발생했다. 열꽃인가 싶을 정도로 아들 몸의 곳곳에 붉은 발진이 나타나자 박씨는 독감을 의심, 동네 의원을 거쳐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아들을 데려갔다.
그러나 검사 결과 독감 증세와 비슷해 보여도 독감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약을 써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들은 급기야 눈 충혈, 경부 임파선 부종 증상에다 손발 피부가 벗겨지고 입안 점막까지 붉어지기 시작했다.
의사는 드물게 감기 뒤끝에 생길 수 있는 심내막염 때문일 수도 있으므로 심장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결국 그의 아들은 또 다른 후천성 심장질환인 가와사키병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속칭 ‘파출소 피했더니 경찰서 앞’이란 말을 실감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가장 흔한 후천성 심장병 중 하나인 가와사키병이 국내에서 계속 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홍영미 교수는 9일 “2006년만 해도 국내 5세 이하 어린이 10만명당 108.7명에 그쳤던 가와사키 병 발생빈도가 최근 112.5∼118.3명까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홍 교수는 한국 가와사키 병 연구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와사키병이란=세균,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가 심장의 관상동맥에 침투, 염증과 동맥류를 일으켜 돌연사 위험을 높이는 게 가와사키병이다.
의학계는 유전적 소인을 가진 어린이가 어떤 병원체에 감염됐을 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으로 발생하는 게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병원체의 베일은 아직 벗겨지지 않았다. 이 병은 현재 세계에서 일본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과 미국에서도 발생률이 높은 편이다.
일본과 한국 미국 등 태평양 연안 국가에서 이 병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 역시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을 거쳐 태평양 너머까지 흐르는 대기권 기류의 영향일 수 있다는 가설이 있다. ‘네이처 과학 리포트(Nature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의과대 제인 번스 교수팀의 보고에 따르면 미주 지역의 경우 태평양에서 일본을 향해 남풍이 부는 여름에는 발병률이 낮고 바람 방향이 바뀌어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을 향해 북서풍이 부는 11월에서 3월 사이에 발병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진단과 치료는=가와사키병은 5일 이상 고열과 함께 피부 발진, 입안 점막 발적, 경부 임파선 부종, 눈 충혈, 손발 피부 벗겨짐 등의 증상 가운데 4가지 이상이 나타날 때 의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불완전형(부정형) 가와사키병’도 적지 않다는 점. 심지어 심장혈관에 이상이 있다는 판정이 떨어진 후에야 뒤늦게 가와사키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홍 교수는 “특히 생후 6개월 미만 영아는 감염 시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고도 관상동맥에 염증과 동맥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밖에도 가와사키병 환자의 20∼30%에서는 관상동맥류 외에 심근염, 판막역류, 심장내막 삼출현상 등 심장 이상 질환이 동반된다.
치료는 고농도의 감마글로불린을 투여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감마글로불린은 핏속에 든 혈장 단백질 가운데 한 성분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가와사키병 환자에게 감마글로불린을 투여하면 해열제를 먹여도 조절되지 않던 열이 떨어지고, 관상동맥류 발생 위험이 2∼4% 수준으로 급감하게 된다는 것.
관상동맥에 생긴 염증 제거를 위해선 아스피린이 필요하다. 아스피린은 가와사키병 환자의 동맥류와 혈전 생성 방지 효과도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