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명희] 구글의 야심

입력 2012-04-09 19:30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건축학개론’에는 삐삐와 휴대용 CD플레이어 등 아날로그 향수를 자극하는 1990년대 소품들이 등장한다. 여주인공이 건축학개론 종강파티에서 애타게 삐삐를 치면서 남자주인공을 찾는 모습이 그려지고, 대학시절 남녀 주인공이 이어폰을 나눠 꽂으며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함께 듣는 모습 등이 나온다. 이 영화가 인기를 끄는 것은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고백 한번 못해본 애틋한 첫사랑에 대한 기억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 때문이리라.

노트북 PC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91년 처음 신문사에 입사해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로 기사를 썼다. 휴대전화가 없던 그 시절 삐삐를 차고 다니면서 수시로 울려대는 ‘그 놈’ 때문에 운전하다가도 아무 데나 차를 세워놓고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고, 어쩌다 조금이라도 늦게 전화를 하면 선배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다고 둘러대면 통했지만 요즘처럼 스마트폰과 메신저, 카카오톡까지 이중삼중으로 연결된 세상에선 핑계거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세상에 기성세대들은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IT제품들은 세대간의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를 심화시킨다.

구글은 최근 영화 속에나 등장했던 ‘터미네이터 안경’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달력, 시계, 온도, 메시지, 카메라, 검색 등 스마트폰의 14가지 주요 기능을 안경에 담았다. 아침에 일어나 컵에 모닝커피를 따르는 순간 몇 시에 누구와 약속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창밖을 내다보면 온도와 비 올 확률을 알려준다. 서점을 향해 걸어갈 때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직진하라’, ‘우회전하라’ 등 경로를 알려준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면서 ‘사진 찍자’고 말하면 카메라가 작동해 사진을 찍는다.

구글의 야심은 끝이 없다. 구글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도서관에 있는 수천만권의 책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에서 볼 수 있게 한 ‘구글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구현한 데 이어 지난해 2월 미술관을 인터넷에 담아놓은 ‘구글 아트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미술품 1000여점으로 시작했던 이 프로젝트는 이달 들어 전 세계 40개국 151개 미술관의 3만여점으로 확대됐다. 안방에서 뉴욕현대미술관에 걸려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감상할 수 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나 런던 국립미술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등의 소장품들을 눈요기할 수 있게 됐다. IT기술 발달이 가져다준 혜택이다.

한편으론 ‘구글의 빅브러더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글은 2005년 6월부터 세계 곳곳의 지도, 지형, 건물 등을 위성 영상으로 보여주는 구글어스를 시작한 데 이어 길거리 모습까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스트리트 뷰’를 선보였다. 길을 걷다가 원하지 않는데도 얼굴이 찍히거나 차량번호가 노출되면서 각국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뜨거웠다.

구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달부터 G메일, 유튜브, 검색,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등 자사의 60여개 서비스를 이용하는 10억명 이상 개인들의 정보를 통합관리하고 있다. 영화감상이 취미인 소비자에겐 최신 영화정보와 관람료 할인받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개인별 맞춤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예언한 것처럼 전 세계가 방대한 정보를 가진 ‘구글 왕국’의 지배와 감시를 받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섬뜩하다.

이명희 산업부 차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