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정착하려면
입력 2012-04-09 18:27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문적 의학지식이 부족하고, 의료사고의 인과관계를 규명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구제를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의료사고가 아니라는 의료진의 일방적 설명을 듣고 물러서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의료진의 위세에 눌려 돈 몇 푼 받고 합의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환자와 가족은 마지막 수단으로 의료사고소송을 택하지만 이를 진행하는 과정은 지난하기 짝이 없다. 상당한 시간과 돈을 부담해야 하고, 설사 소송에 이기더라도 변호사 선임 비용을 주고 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을 정도다. 주변에서 의료사고소송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환자와 의사간의 의료분쟁이 빈발해 왔다. 한국소비자원과 법원에 접수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건수는 2000년 1674건에서 2010년 3618건으로 급증했다. 1심 판결이 내려지는데 평균 2년 2개월 걸리는 등 시간적·경제적 부담도 무척 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9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출범시켰다.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환자들이 소송을 내지 않고 피해를 배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제도가 환자 이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내년 4월 8일부터 의사 과실이 가볍고, 조정이 성립되면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면제된다. 또 불가항력적인 분만사고의 경우 산부인과 의사들의 보상책임을 50%에서 30%로 낮췄고, 시행을 1년간 유보한 상태다. 이 정도면 보건복지부가 대한의사협회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했다고 봐야 한다.
이 제도는 의사가 불참하면 조정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복지부와 의협은 제도를 시행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의협이 무조건 반대만 하다가는 국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