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택 (24) 당신 집 호주가 예수라면… 그래도 바람 피겠어요?

입력 2012-04-08 18:05


내가 생각해도 나는 꽤 오지랖이 넓은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신 것 같다. 여기저기 끼어들 일이 잘 생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웬만하면 남의 가정사에는 개입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그럴 일이 가끔 생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김 단장님, 저 죽고 싶습니다. 아니, 저 자살할 겁니다. 죽기 전에 김 단장님 목소리나 한 번 들으려고 전화했습니다.”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온 연예기획사 이 사장이 전화를 걸어와선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평소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그가 한껏 기가 꺾여서 죽는다는 소리까지 하는 게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사장, 일단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죽더라도 얼굴이나 한 번 보여주고 죽어. 지금 어디야? 여의도라고? 지금 바로 렉싱턴호텔 커피숍으로 와. 알았지?”

나는 하던 일을 제쳐두고 달려갔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던 그는 나를 보자 벌떡 일어서 두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많이 수척해 보였다.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를 따져 물었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랬다. 그놈의 바람기가 또 발동한 것이다. 워낙 준수한 외모에다 달변인 그는 이전에도 두어 차례 이런 일로 가정의 풍파를 겪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달라요.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요. 와이프가 반드시 이혼을 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어요. 저 이혼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분했다. 일단 그의 잘못에 대해 훈계를 했다. 그의 입에서는 ‘잘못했다’는 말이 연신 나왔다. 그런 가운데 묘한 생각이 일어났다. ‘잘하면 이번 기회에 이 친구의 버릇을 제대로 고치고 전도도 할 수 있겠구나.’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김정택입니다. 속 많이 상하셨죠? 제가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는데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안 만나겠다는 부인에게 통사정을 해서 호텔의 일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참 후 약속 장소에 온 부인은 자기 남편이 함께 있는 걸 보자 싸늘하게 되돌아섰다. 나는 부리나케 달려나가 다시 애원을 해서 겨우 방으로 들였다. 부인은 아예 남편을 외면했다.

나는 비로소 내 작전을 수행했다. 부인이 보는 앞에서 자기 남편을 혼내기 시작했다. “이봐 이 사장,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로 시작해서 원색적인 표현까지 해가며 아주 박살을 냈다. 내가 생각해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세게 퍼부었다. 부인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선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거기다 잘하면 부부로서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봐, 이 사장.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약속하고 각서를 써! 한 번만 더 그랬다간…”

나는 아예 이 사장에게 무릎까지 꿇렸다. 부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그리곤 부인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고 부탁했다. 만약 한 번만 더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나서서 이혼을 주선하겠다고 하면서 사정하고 애원했다. 30여분을 그렇게 하자 완강하기만 하던 부인의 태도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이때다 싶어서 나는 부부가 신앙생활을 하면 절대로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없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이 사장, 당신 집의 호주를 예수님으로 해봐. 그러면 완전히 변화할 수 있어. 나도 그랬고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그랬어. 그럴 수 있어?”

“예…”

나는 양 손으로 이 사장과 부인의 손을 각각 잡고 영접기도를 드렸다. 그러면서 이 사장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했다. 이후 나는 매주 한 번씩 전화를 걸어 부부의 신앙생활을 점검하고 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