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기관의 명예훼손 소송 신중해야
입력 2012-04-08 18:25
국가정보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명예훼손을 놓고 벌인 소송에서 박 시장이 최종 승리했다. 대법원은 “국정원이 민간사찰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국가가 박 시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주에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국가기관이 주체가 되는 명예훼손 소송에 하나의 기준점을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민간사찰을 둘러싼 다툼은 지난 2010년에 시작됐다.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일하던 박 시장이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희망제작소가 지역홍보센터 사업을 3년에 걸쳐 하기로 행정안전부와 계약을 했다가 1년 만에 해약 통보를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국정원에서 개입했다고 한다”며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국정원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국가 명의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국가는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늘 국민의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하므로 원칙적으로 명예훼손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두 가지 조건에 해당하면 예외라고 밝혔다. 명백한 허위사실의 유포나 악의적인 비방이 그것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주장은 다소 근거가 부족하거나 진위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긴 해도 국가에 대한 악의적 비판은 아니라고 보았다.
국가기관이 명예훼손의 당사자가 됐을 경우 소송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적절하게 대응하는 게 옳다. 예산으로 재판비용을 쓰는 국가기관과 그렇지 않은 개인 간의 소송은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그렇다고 국가의 명예가 지킬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잘못된 주장이나 보도가 나오면 스스로 당당하게 사실을 밝히거나, 정정이나 반론보도를 청구하면 된다. 국가기관의 명예는 점잖고 품위있는 방법으로 지키라는 것이 이번 판례에 담긴 의미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