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유권자는 현명하다”

입력 2012-04-08 18:12

“천재는 환경보다 유전이다.” 유전자학을 인류 개량에 응용해야 한다는 소위 우생학(優生學)을 창시한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의 말이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인종 청소’의 근거로 활용한 위험한 이론이다.

골턴의 신념은 생애 끝 무렵 다소 바뀌었다고 한다. 85세 때인 1907년 소 한 마리의 무게를 가장 근접하게 맞힌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대회를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됐다. 참가자는 800명. 골턴은 대중들의 어리석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들이 적어낸 답안의 평균을 구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평균치는 1197파운드. 실제 소의 무게 1198 파운드와 1파운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골턴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개인 하나하나는 어리석을지 모르지만, 개인이 모여 대중이 되면 훨씬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

우리나라 유권자들도 각종 선거에서 현명함을 보여줬다. 총선을 비롯한 전국 선거에서 ‘황금 분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개표 완료 직전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표를 나눠주며 여야에 오만하지 말도록 경종을 울려준 사례들도 적지 않다. 1997년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킴으로써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기도 했다.

안타깝지만, 유권자들이 선택한 지난 18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었다. 새해 예산안이 4년 내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통과될 때는 해머와 전기톱 ‘공중 부양’이 등장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 테러가 발생했고, 국회의장이 불미스런 일로 중도하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국회 의석수를 299석에서 300석으로 늘리는 뻔뻔함도 보여줬다. 폭력과 파행, 제밥그릇 챙기기가 난무한 것이다.

이처럼 간혹 우리 정치가 후퇴해도 장기적으로는 발전되고 있다고 믿는다. 4·11 총선은 그런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선거가 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유권자들의 슬기가 요구된다.

먼저 18대 국회에서 우리 정치를 국제적 조롱거리로 만든 이들을 심판하는 일이 필요하다. 누가 우리 정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상스러운 말로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 같은 이들이 민의의 전당에 들어가면 어찌 되겠나. 19대 국회가 18대보다 더 혹평을 받으면서, 유권자 수준도 의심받게 될 것이다. 4·11 총선 직후 ‘유권자는 현명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을까.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