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단체 기세… 당황하는 정부·기업

입력 2012-04-06 18:48


금융·세금 등 경제이슈 제기, 여론 지지 얻어

모 생명보험사 설계사는 5∼6일 이틀간 계속 걸려오는 해약요구 전화에 당황했다. 고객들이 생활비 마련 차원에서 도중 해약한 사례도 있지만 아예 계약단계에서 취소하거나 계약한 지 얼마 안됐음에도 막무가내로 해약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6일 “변액연금상품 대다수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는 금융소비자연맹의 주장이 최근 보도되면서 고객들이 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금융, 세금 등 경제문제를 다루는 소비자단체들의 파워가 대단하다. 이들은 어려운 경제이슈를 전문성 있게 소개하고 정책을 비판하면서 여론의 지지까지 얻고 있어 기업과 정부를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들 단체가 자의적 정보 선택과 폭로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없지 않아 여론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유류세부터 보험수익률까지 소비자단체 기세 등등=기획재정부는 요즘 군소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의 잇단 유류세 인하 요구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납세자연맹은 지난 3일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감안한 휘발유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2.4배 높다는 자료를 냈다. 높은 휘발유 가격으로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에 재정부는 당일 부랴부랴 “유로존 회원국들을 포함하면 국내 휘발유 가격은 OECD 평균대비 1.44배 정도”라는 해명 자료를 냈다.

하지만 연맹은 곧바로 “재정부가 보통휘발유가 아닌 고급휘발유 통계로 국민을 기만했다”고 비난했고 여론 역시 “44%도 높은 수준”이라며 공격하자 재정부는 납작 엎드렸다.

은행 보험사들은 최근 금융소비자연맹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연맹이 파괴력 있는 자료를 잇달아 내면서 고객의 항의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연맹이 낸 ‘서민은행의 꺾기 대출 실태’ ‘변액보험 수익률 공시’ ‘생명보험사에 대한 공동소송’ 자료에 금융권은 발칵 뒤집혔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서민들이 경제상황이 좀처럼 개선이 되지 않아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소비자단체의 지적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의적 통계, 일방주의적 주장 폐해도=생명보험협회는 금융소비자연맹의 ‘변액연금보험 비교정보’ 자료에 대해 강력 반발하면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맹 측이 펀드설정당시의 금융시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기준을 잡아 수익률이 왜곡됐다고 비판했다.

소비자단체들이 여론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전제조건을 무시하고 특정 상황만 짚어 공개한다는 비판은 종종 제기돼 왔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소비자단체는 광고 요청을 거부하는 업체들에 대해 보복성 자료를 내곤 한다”고 귀띔했다. 잘못된 정보제공도 없지 않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는 최근 ‘저축은행 5대 정책실패와 책임관료 26인’ 보고서를 냈지만 정부의 항의를 받고 일부 명단을 삭제한 바 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