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성석제 장편소설 ‘위풍당당’

입력 2012-04-06 18:12


‘내면성’을 중심으로 짜인 문학 판에서 소설가 성석제(52)는 예외적인 존재이다. 십중팔구 내면 소설을 지향하는 세태에서 그는 거침없는 입담과 현대적 해학을 무기로 들었다. 신작 장편 ‘위풍당당’(문학동네)은 성석제 소설 중에서도 이야기꾼의 본분을 뚜렷하게 실감케 하는 작품이다. 소설 ‘위풍당당’은 무엇으로 위풍당당한가.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궁벽한 강마을 사람들이 그 마을을 접수하러 간 전국구 조직폭력배들과 일전을 벌인다. 시골 마을을 얕잡아보고 의기양양하게 쳐들어간 조폭들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한다. 반대로 한 마음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동안 강마을 사람들의 이해와 애정은 더욱 깊어진다.

발단은 이렇다. “그런데 따라오고 있다. 검정색 벤츠에 탄 사내들. 우리에서 뛰쳐나온 맹수, 끈 풀린 미친 개 같은 인간들. 시속 오 킬로미터로 걷는 새미를 시속 오 킬로미터의 속도로 따라오는, 짙은 선팅으로 시커먼 유리 속,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세 인간들.”(24쪽)

읍내로 생리대를 사러가는 강마을 처녀 새미의 꽁무니를 따라붙는 조폭들 가운데 똘마니 이세동이 우두머리 양정묵에게 말한다. “홀랑 벗겨져 새하얀 접시에 살짝 올려놓고 자세히 음미해보실 생각 있으심까, 형님?” 양정묵이 말한다. “너는 길가에 야생화 피어 있으면 죄다 꺾어다가 네 방에 갖다 꽂냐?” 숲으로 사라진 새미를 찾기 위해 차에서 내린 세동은 누군가로부터 급습을 받고 쓰러지고 만다.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강마을 사람들은 서로 피는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모두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잔인한 인생의 굴레에서 버림받은 채 강마을에 안착했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도망가지 않고 응전하기로 한다. “불도저와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와 덤프트럭 수백 대가 강변의 흙길을 따라 열을 지어 들어오고 있다. 엔진 소리와 땅을 짓누르는 바퀴 소리가 땅을 진동시킨다. 배기구에서 뿜어내는 연기로 차량 대열 위 공중은 옛날 증기기관차가 지나갈 때처럼 뿌옇게 물들어 있다. 군대처럼 밀고 들어온다. 마을이 생긴 이래, 강이 생긴 이래 이토록 많은 내연기관이 한꺼번에 진주한 적이 없었다.”(210쪽)

조폭들의 기계군단은 강을 비롯해 나무, 바위 등을 내리치며 자연을 균열내고, 짓밟고 휘젓는다. 생명을 멸절시키는 기계군단의 침해는 강마을 사람들에게 또 다른 적,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마을 사람들의 대응책은? 조폭들에게 궁벽한 시골의 찌는 듯한 더위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목이 타들어갈 때 ‘참새만한 모기’들이 조폭 일당을 공격한다. ‘말벌의 정예 전투원’에게 혼쭐이 나는가 하면 ‘고추 잿물 폭탄’과 십 년 묵은 ‘분뇨 폭탄’으로 조폭들은 육체적·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모든 공격 무기는 ‘자연’에게서 얻은 것들이었고, 자연이 인간에게 되돌려준 ‘자연물’이었다. 성석제는 이 싸움을 우리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를, 또 다른 싸움의 대리전 성격으로 봐주기를 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불가항력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이 이 소설의 위풍당당함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