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FTA 관세인하 효과 독차지한 업자들
입력 2012-04-06 18:00
정부는 우리나라가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상당수의 수입제품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수입제품의 관세가 철폐되거나 단계적으로 낮아져 국내 소비자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본 것이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말을 대체로 신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EU, 한·미 FTA가 각각 발효된 지 9개월과 20일이 지났지만 정부 전망이 크게 빗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5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킴스클럽 강남점을 방문해 미국산 9개, 유럽산 9개 제품의 FTA 발효 전후 가격동향을 비교한 결과 11개 품목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EU FTA 발효 후 관세(8%)가 철폐된 브라운 전동칫솔, 테팔 전기다리미, 휘슬러 프라이팬 등 유럽산 6개 품목은 종전 가격 그대로였다.
유럽산 발렌타인 17년산 위스키, 미국산 밀러 캔맥주와 병맥주의 가격도 변하지 않았다. 특히 관세(45∼54%)가 완전히 철폐된 미국산 웰치스 포도주스와 오렌지주스의 가격은 요지부동이었다. 유럽산 필립스 면도기는 가격 인하폭이 관세 인하폭보다 적었다. 물론 미국산 오렌지처럼 수입업자들이 많은 물량을 들여와 관세 인하율보다 소비자 가격이 더 떨어진 품목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FTA 발효 효과가 ‘실종’된 것은 수출업자가 가격을 올렸거나 유통업자들이 높은 마진을 챙기는 등 농간을 부린 탓으로 봐야 한다. 통상당국은 수출업자의 가격 부풀리기 행태에 해당 정부가 개입하도록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공정위는 유통단계별로 불공정거래 행위가 있는지 모든 품목을 주기적으로 조사해 가격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공정위가 조사하지 않은 명품 가방, 화장품 등은 한·EU FTA 발효 후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소비자원과 소비자단체들은 수출업자와 유통업자가 폭리를 취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소비자운동을 적극 전개하기 바란다.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