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그리스… 약사출신 70대 연금생활자 의회앞서 권총자살

입력 2012-04-05 19:11

“내 빚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여느 때처럼 출근길로 붐비던 4일(현지시간) 아침,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약사 출신의 77세 노인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남긴 절규였다.

생활고를 비관하며 대낮 시내 번화가에서 행한 공개자살이 그리스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5일 보도했다.

드미트리스 크리스툴라스로 알려진 이 노인은 숨지기 전 남긴 유서에서 “35년 동안 연금을 부었지만 현재 국가는 나의 모든 생존의 길을 막아버린 상태”라며 “쓰레기통을 뒤지며 연명하는 것을 거부하는 나는 자살 이외의 존엄성을 지킬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무능한 정치인들을 고발하며 자국 청년들이 “1945년 이탈리아 시민이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축출했듯이 그리스의 반역자들을 신타그마 광장에서 목매달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다음날 시민들은 자살이 일어난 나무 주변에 꽃을 놓으며 노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나무 주변에는 “자살피해는 이미 충분하다”, “다음 희생자는 누구냐?” 등의 메시지가 걸려있었고 일부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했다.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도 성명을 발표하며 “지금은 국가 전체가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우리는 절망에 빠져있는 이웃을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정위기에 따른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그리스의 자살 사망자수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유럽 국가 중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던 그리스의 자살률은 경제난 이후 해마다 40%가 넘을 정도로 급증하는 실정이다.

홍혁의 기자 hyukeu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