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매장 돌아본 공정위원장, 혀를 쯧쯧 찬 이유

입력 2012-04-05 21:44


5일 오전 10시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7층 생활가전 매장.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매장에 진열돼 있는 브라운 진동칫솔을 응시했다. 브라운 진동칫솔에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전인 14만9000원의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테팔 전기다리미도 FTA가 체결된 지 6개월이 지났음에도 가격은 11만2800원 그대로였다. 이들은 기존 관세 8%가 완전히 철폐된 품목이었다. 김 위원장은 “왜 FTA가 체결됐는데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느냐”며 혀를 찼다.

김 위원장은 이어 지하 1층 위스키 매장으로 이동했다. 발렌타인 17년산 위스키에도 한·미 FTA 체결 전과 같은 14만5000원의 가격표시가 선명히 나와 있었다. 매장 직원은 “위스키 공급사에서 운영비와 인건비, 물가 상승률 등으로 가격을 내릴 여지가 안 된다”고 밝혔지만 김 위원장은 “그래도 소비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가격인하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신세계백화점에 이어 인근 킴스클럽 강남점을 찾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예상했던 가격인하 품목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상당수 수입물품의 가격은 해당 국가와의 FTA 체결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김 위원장은 한·EU, 한·미 FTA 체결 이후 유통매장을 처음 방문했지만 가격인하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만 목격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날 김 위원장이 가격을 점검했던 18개 품목 중 FTA 발효 후 가격이 전혀 인하되지 않은 품목이 11개로 60%를 상회했다.

브라운 칫솔, 휘슬러 프라이팬을 비롯해 테팔 전기다리미, 웰치스 주스(포도, 오렌지), 발렌타인 위스키, 밀러 맥주 등의 가격인하율이 제로였다. 8%의 관세가 완전히 사라진 필립스 면도기와 미국산 키친에이드 냉장고도 가격인하율은 각각 3%, 5%에 불과했다.

다만 미국산 오렌지, 아몬드, 호두 등 식품류는 8∼25% 정도로 가격 하락 폭이 컸다. 위스키와 달리 미국산 와인은 FTA 발효 이후 18만원에서 16만원으로 가격이 11% 내렸다.

김 위원장은 김우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장에게 “미국산 와인과 호두, 아몬드의 가격이 내려 신세계 백화점의 판매량도 크게 늘지 않았느냐”며 “소비자에게 FTA 효과가 돌아가도록 백화점도 적극 프로모션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김 점장은 “소비자들의 품질과 가격에 대한 높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했다.

공정위는 일부 인기가 많은 고급 제품의 수입업체 및 판매업체들이 관세인하분을 소비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내부 이익으로 흡수하는지 여부를 면밀하게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혔다. 또 소비자원과 협력해 가격이 내리는 정도가 미흡한 전기다리미, 전기면도기, 전동칫솔, 프라이팬, 위스키 등 5개 품목을 가격비교 정보 제공 대상으로 선정, 유통단계별 가격 수준을 분석해 오는 6월까지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