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신용등급의 명암

입력 2012-04-05 18:38

한 나라의 채무 이행 능력과 의사를 등급으로 표시한 것이 국가신용등급이다. 보통 국채의 신용등급을 의미한다. 1984년까지만 해도 국제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받은 정부는 12곳에 불과했다. 80년대 후반 개발도상 국가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면서 대상 국가가 크게 늘었다.

한국은 비교적 양호한 신용등급을 받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상태까지 떨어졌다. 구제금융과 뼈를 깎는 자구노력 등에 힘입어 2001년 8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벗어난 뒤 예전의 신용등급을 회복했다. 한때 잘나가던 영국과 멕시코도 IMF 원조로 경제위기를 극복했고, 구소련의 막대한 해외부채에다 아시아 경제위기의 직격탄까지 맞은 러시아는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선언했다.

급기야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미국도 연방정부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해 8월 미 국채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등급 내린 것이다. 이 여파로 주요 국가의 증시가 폭락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유럽 재정위기의 먹구름은 아직도 걷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신용등급·전망을 무더기로 낮춘 국제신용평가사들의 부정적 평가가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무디스가 지난 2월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6개국 신용등급을 강등했고,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S&P는 EU가 재정 위기에 처한 회원국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신용등급까지 지난 1월 내렸다.

세계 경제의 기상전망이 암울한데도 한국 정부와 기업은 선전하고 있다. 무디스가 지난 2일 한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A1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한국 정부가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보다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했다. 10억 달러 모집에 무려 4.4배의 자금이 몰리며 가산금리를 크게 떨어뜨렸다. 최근 정부가 발행한 외평채는 가산금리가 110bp(1bp=0.01%)였지만 삼성전자는 80bp였던 것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보다 삼성전자의 신인도를 더 높게 대우해준 것이다. 15년 만에 저렴한 금리로 달러 채권 발행에 성공한 삼성전자 사례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채권 발행에도 희소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