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치기’ 소싸움에 봄꽃도 화들짝… 경남 진주 진양호공원 소싸움대회 인기

입력 2012-04-04 18:27


싸움소 두 마리가 왕방울 크기의 눈을 치켜 뜬 채 기 싸움을 한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고삐 풀린 싸움소가 머리를 맞대고 힘자랑을 시작한다. 봄 햇살에 반짝이는 뿔이 검객의 칼날처럼 날카롭다. 관중의 환호성에 흥분한 싸움소들이 체중을 실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모래알이 튀어 오르고 뿔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소싸움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주 토요일 소싸움대회가 열리는 경남 진주는 소싸움의 발원지. 로마의 콜로세움을 닮은 전통소싸움경기장은 싸움소와 관중들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하다. 싸움소들은 울장으로 불리는 원형의 모래판에서 상대가 꼬리를 내리고 달아날 때까지 힘자랑과 함께 온갖 묘기를 선보인다.

진주 소싸움대회는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 기념잔치에서 비롯됐다는 설과 고려 말엽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설이 구전돼 오고 있다. 소싸움대회가 열리는 며칠 동안은 싸움소가 일으키는 뿌연 모래 먼지가 남강의 백사장을 뒤덮을 정도.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소싸움으로 민족의 울분을 발산하는 수만 군중들 때문에 일본인들이 겁에 질려 남강 나루를 건너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명절이나 축제 때 천수교 아래 남강둔치 모래판에서 열리던 소싸움대회가 상설화된 것은 2001년.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축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2006년에는 진양호공원에 전용 소싸움경기장이 들어섰다. 입장료를 안 받는데다 관중에게 푸짐한 경품도 제공해 진주 소싸움경기장은 토요일마다 축제장으로 변신한다.

겨우내 폐타이어를 끌며 체력을 단련한 싸움소들의 입장식은 위풍당당하다. 어떤 녀석은 입장하자마자 상대를 향해 덤벼들고, 어떤 녀석은 경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송아지처럼 울장을 껑충껑충 뛰어다녀 심판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싸움소들은 주인인 우주(牛主)가 고삐를 푸는 순간 상대의 눈을 노려보며 기 싸움을 하다 점잖게 머리를 맞댄다.

씨름이나 레슬링처럼 소싸움도 체급별로 진행된다. 진주 소싸움의 체급은 백두(751㎏ 이상), 한강(661∼750㎏), 태백(600∼660㎏) 등 3가지. 1t에 가까운 육중한 소들이 사력을 다해 머리를 부딪치고 달릴 때는 땅이 울릴 정도. 특히 진주 소싸움경기장은 울장과 관중석이 가까워 소들의 거친 호흡까지 생생하게 들린다.

첫 번째 경기는 태백급으로 합천에서 온 폭풍(5세)과 산청 출신인 지수(6세)의 대결. 의외로 폭풍의 고삐를 잡고 입장하는 우주는 젊은 여성이다. 청바지가 멋스런 우주와 짙은 갈색 털에 비녀뿔이 날카로운 폭풍은 애니메이션 영화 ‘미녀와 야수’를 닮았다. 반면에 뿔걸이가 장기인 지수의 우주는 뿔테 안경이 어울리는 젊은 남성. 폭풍과 지수의 대결 못지않게 우주들의 신경전도 팽팽하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를 신호로 폭퐁과 지수가 울장 한가운데서 서로를 노려본다. 싸움소들의 주무기는 날카로운 뿔. 녀석들은 뿔의 모양에 따라 본능적으로 유리한 기술을 구사한다. 뿔은 비녀처럼 일자형으로 생긴 비녀뿔, 하늘로 치솟은 형태의 옥뿔, 옥뿔이 앞으로 굽은 노고지리뿔로 대별된다. 목의 힘으로 싸우는 소에게 유리한 뿔은 비녀뿔. 싸우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지만 소는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꼬리를 내려 큰 부상은 없는 편.

전국소싸움대회에서 2년 연속 16강에 오른 지수가 먼저 공격을 한다. 지수의 주특기는 상대의 뿔을 걸어 누르거나 들어올리는 뿔걸이. 폭퐁의 반격도 만만찮다. 체력이 좋은 폭풍이 지수 목에 머리를 걸어 들치기를 시도한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뿔을 흔들며 상대를 공격하는 뿔치기, 사력을 다해 밀어붙이는 밀치기, 상대의 옆구리 쪽 배를 공격하는 옆치기 등 다양한 기술들이 동원된다.

“초반 주도권은 지수가 쥐고 있네요. 폭풍이 주둥이를 살살 틀지만 지수의 뿔이 만만치가 않지요. 폭풍의 뿔이 40∼50㎝ 되는 것 같은데 한 방 맞으면 어떻게 되나요?” “엄청 아프지요.” “두 방 맞으면요?” “더 아프지요.” “세 방 맞으면요?” “집으로 가야지요.” “이기는 소는 집으로 가지만 지는 소는 거리를 방황해야 해요. 우주가 쪽팔려서 해가 지고 캄캄해져야 집으로 데리고 가니까요.”

소싸움은 해설사의 걸쭉한 입담으로 인해 더욱 즐겁다. 진주 소싸움 해설사는 8년 경력의 강동길(52)씨. 소싸움에 대해 해박한 강씨가 중계방송하는 해설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병원 홍보실장이 직업인 강씨는 이벤트 행사를 도맡아 하는 팔방미인. 우연한 기회에 소싸움 이벤트 사회를 맡았다가 아예 해설사의 길로 들어섰다. 싸움소와 관중, 그리고 해설사가 호흡이 맞아야 소싸움의 재미가 배가된다는 강씨는 관중들이 경기에 몰입해 조용하면 “와이라노, 와이라노, 박수 안 치는 사람들은 뭐하능교?”라면서 박수와 폭소를 유도한다. 요즘에는 강씨가 경상도 사투리로 서너 시간 동안 술술 풀어내는 입담을 즐기기 위해 소싸움경기장을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

소싸움의 경기시간은 무제한이다. 통상 15∼20분이면 승부가 결정 나지만 어떤 녀석들은 1시간 이상 머리를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기도 한다. 어떤 녀석들은 입장하자마자 상대방의 강렬한 눈빛에 압도돼 줄행랑을 놓기도 하고, 아예 경기장이 무대인 양 울장을 뛰어다니며 공연을 하는 싸움소도 있다.

눈송이처럼 하얀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진양호공원. 싸움소들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관중들의 환호가 어우러져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안 진주의 봄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진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