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현동]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

입력 2012-04-04 21:51


“언론이 정치권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건 아닌지… 마치 충성스러운 전사처럼”

언론이 미쳤다. 팩트(fact)라 주장하지만 진실은 묻혔다. 정의를 앞세웠으나 정파성이 교묘히 숨겨져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쓰고 싶은 것만 썼다. 진보언론이 그랬고,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앞두고 터진(터뜨린) 총리실의 불법사찰 보도를 보면 우리 언론의 수준이 과연 이 정도인가라는 자조가 절로 나온다.

진보와 보수 앞에 진실은 외면 받았다. 솔직히 수단으로 전락한 측면도 없지 않다. 사정이 이럴진대 일부 언론은 나만이 정의인양 목소리를 높인다. 정의가 그들의 독점적 가치라도 된다는 말인가. 푸줏간의 소가 웃을 일이다. 보수언론이라고 해서 진실과 정의의 가치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고, 진보언론 역시 진실과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그렇다고 진보의 정의가 보수의 정의와 다를 수 없다.

언론 현실은 과연 그런가. 내가 보기엔 단연코 ‘노(NO)’다.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고 진실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의의 가면을 썼을 뿐이다. 기술적 왜곡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내 편, 네 편’이라는 진영논리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흙탕 개싸움에 함께 뒤엉켜 싸우는 형국이다. 신문이 그렇고 방송이 그렇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국민들로선 어느 쪽이 암까마귀고 수까마귀인지 헷갈린다. 마치 언론이 정치권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한쪽은 여당을 위해, 다른 한쪽은 야당을 위해. 그것도 매우 충성스러운 전사(戰士)처럼.

정치권은 논외로 하자. 그쪽은 원래 그랬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그들 아닌가. 얼굴이 두껍기로는 비교할 상대가 없는데다 더욱이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이런 때일수록 언론이 판단의 중심축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불법사찰과 관련해서 과거 정부도, 현 정부도 상대를 욕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미래를 고려한다면 진정으로 재발을 방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정치공세를 하기 전에 사실관계를 따지고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게 순서다. 남 눈 속의 티만 크다 할 것이 아니라 내 눈의 들보를 먼저 살피는 게 도리라는 이야기다. 언론보도의 준칙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어떤 언론은 “너도 그랬잖아”라며 과거 정부의 과오를 따지고, 다른 언론은 “과거는 과거고, 현재가 문제”라며 현 정부 책임론에 집착한다. 둘 다 정파적이다. 화합과 통합을 강조하면서도 펜과 마이크로는 갈등과 분열, 편 나누기에 열을 올린다.

정의와 진실추구는 말뿐이고 왜곡과 저주가 난무한다.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심하게 말하면 ‘당보(黨報)’를 보는 듯하다. 진실과 정의, 불편부당(不偏不黨)을 금과옥조처럼 강조하고 있는 우리 언론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언론의 역할이 중대하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잘못된 보도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안다. 결과론적 오보도 문제지만 왜곡은 더 그렇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불법사찰과 관련한 보도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조각조각은 맞는 주장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조각을 조합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온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잘못을 눈 감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유불리에 따라, 정파적 견해에 따라 팩트를 편집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자는 것이다. 합리적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할지언정 혼란만 가중시켜서야 될 일인가.

짐작컨대 적어도 총선 전까지 이런 혼란은 더 심해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과 언론은 공동정범이다. 언론(인)이 정치의 영역을 넘나들 때 감당하기 어려운 비수가 돼 돌아온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또다시 이런 부메랑을 맞을 것인가. 선택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박현동 편집국 부국장 hd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