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방랑기(36) - 하나밖에 없는 십자가 동창생
입력 2012-04-04 17:08
하나밖에 없는 십자가 동창생
나 예수는 다시 살아난 뒤에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꼭 한 번 더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했던 그 주간 금요일 오전 같은 시각에 결행했습니다.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 받던 장소부터 시작하여 해골 곧 골고다 언덕까지 한 발자국씩 천천히 떼어 놓으며 걸었습니다.
가시관을 강제로 씌워줄 때 그 아픔이 되살아났습니다. 옷을 벗길 때 그 수치감도 생생했습니다. 공중에 매어달아 놓고 채찍질할 때에는 한 순간 정신이 버쩍 들었지만 이내 혼수상태로 들어갔습니다. 채찍에 끼워 놓은 철편들이 온 몸을 사정없이 찢어 놓았고 피가 주르륵 떨어지는 걸 본 순간입니다.
그런 다음 나 예수를 못 박아 죽일 십자가를 내 어깨에 지우고 빨리 가라며 또 채찍질을 했습니다. 성문 밖으로 내어 몰더니 로마 군병들이 좌우를 둘러싸고 물샐틈없는 경계를 펴며 계속 잔인하게 채찍질을 퍼부었습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엎드러지고, 곱드러졌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발 디딜 틈도 없이 길 양편에 빼곡하게 둘러섰습니다. 나 예수와 함께 처형될 두 강도도 이끌려오고 있었습니다.
절반쯤이나 걸어갔을까, 나 예수의 사형을 집행하는 백부장의 명령이 들려왔습니다.
“십자가 형틀을 다른 사람이 지고 가게 하라.”
로마 군병은 그 주위에 건장하게 생긴 남자 청년 하나를 우악스러운 손으로 잡아 끌어냈습니다. 그리고는 나 예수가 지고 왔던 형틀을 그의 어깨에 옮겨 지웠습니다. 힐끗 보니 얼굴이 가무잡잡했습니다. 그는 재수 없게 걸려들었다는 듯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무거운 형틀을 지고 뚜벅 뚜벅 걸어갔습니다.
나 예수는 그 때야 비로소 좌우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따라오는 여성들이 보였습니다. 또 어떤 젊은 처녀가 잽싸게 달려 나와 무릎을 꿇고 내게 물과 수건을 건네주었습니다. 베로니카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십자가에 처형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교훈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나 예수의 형틀을 대신 짊어진 그 청년 덕택이었습니다.
고난의 길 답사의 발걸음이 그 지점까지 미치게 되자 그를 꼭 만나야 하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리 저리 수소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아직 뛰넘절(유월절) 행사를 마치고도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답니다.
“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오신 시몬 선생이시라고요. 저는 나사렛 사람 예수입니다.”
그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나 예수의 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넓적 엎드렸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로마 군병이 그 형틀을 저의 어깨에 메고 가라고 할 때 증오의 눈으로 쳐다 본 저를 꼭 용서하십시오. 그 때는 정말 몰라 뵈었습니다.”
나 예수는 그의 손을 꼭 잡아 일으켰습니다. 십자가 못 자국이 남아 있는 손입니다. 그리고 함께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드리려고 수소문해서 찾아왔습니다. 나 예수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진 사람은 시몬 선생 오직 한 분뿐입니다. 사선을 넘을 때 함께 고통을 나눈 분이니 제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셨습니다.”
“온 인류의 구원주 되시는 분의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져드리게 되었으니 이런 큰 영광과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십자가 학교 동창생이 되다니요.”
그 말을 할 때 문이 열리며 소년 둘이 들어왔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두 아들들이라며 알렉산더와 루포라고 이름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축복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시몬은 그 뒤에 구레네(지금의 리비야 수도 트리폴리)로 돌아가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예루살렘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교회는 곧 나의 몸이라는 말에 감격하여 예루살렘교회를 온 가족이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피난민을 위하여 설립된 안디옥교회로 가서도 바울 사도와 함께 온 가족이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나 예수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시절 로마에 갔다가 그 가족을 또 한 번 만났습니다. 그 곳에서 돈을 벌어 사도 바울의 선교를 뒷바라지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너무 감격하여 시몬의 부인을 자신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롬16:13).
이정근 목사 (원수사랑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