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하나님이 부여한 직무 잘 수행할 사람 뽑아라…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입력 2012-04-03 18:35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김선욱 외 8명/IVP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뉴욕 리더머교회 담임 팀 켈러 목사는 “교회만이 누리는 샬롬은 그만두라”고 외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라는 더 큰 비전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대의정치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공의의 직무를 수행할 지도자를 뽑는 제도이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선거는 이웃사랑의 간접적 실천 방식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서 당의 정책적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특정 세력의 이익에 복무하는 세속적 가치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마저 ‘생각당할’ 것이다.

이러한 시의적 과제를 염두에 둘 때, ‘한국 사회 핵심 이슈에 대한 기독교적 진단과 대안’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진일보시킬 작품이다. 1부는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 원리들을 제시하는데, 하나님의 성품인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반영하는 정책과 실천력의 요청(백종국), 사회를 선도하는 보편적 준거점인 소금과 빛의 기독교적 가치체계(김선욱), 구약 희년법에 나타난 약자보호와 형평주의 사상이 신약의 하나님나라 운동에서 형제자매 돌봄주의로 전승되는 경제이념(김회권)이 그것들이다.

2부에서는 성경의 원리를 바탕으로 각 전문가들이 핵심 이슈들의 현안과 대안을 논한다. 남북 간의 평화적 관계 진작(허문영), 산업개발주의에 대응하는 생명적 환경운동(김정욱), 교육의 양극화와 기득권을 타파하는 십자가 정신의 교육정책(김성천), 한국형 약자보호의 효과적 정책인 보편적 복지(정무성), 아합과 나봇의 토지분쟁을 오늘에 적용한 전 국민 주거권 옹호(남기업), 그리고 동반 성장적 공동체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경제 정책들(권영준)이 각각 제시되었다. 특히 한미 FTA를 전망하면서 무조건 거부 보다는 교회들이 대안적 활동(친환경유기농업과 사회적기업)들에 참여하자는 권영준의 제안은 ‘국가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한 가지 기관일 뿐이며, 교회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중심기관’이라는 하워드 요더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 정치에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대안적 정치 공동체가 되느냐가 더욱 근본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기고자들은 현 정부의 정책과 실행에 대한 평가에선 매우 인색하다. 인정해주자면 교육 분야에서 정책적 일관성은 떨어지지만 특목고 입학전형 개혁, 특성화고교 육성, 입학사정관제 활성화의 성과와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증세정책에선 여야가 전반적으로 같은 방향을 채택한다는 정도다. 창조세계와의 돌봄 공존을 지향하는 성경적 청지기 사명에 비추어볼 때, 환경 정책은 지난 정부의 가장 심각한 탈선이지만, 이전 정부도 크게 다르진 않다. 사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은 민심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하기에 정책상의 차이는 좁혀지게 돼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진단과 대안도 공약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각 후보자들 자신이 내세우는 정책과 얼마나 일관된 삶을 살아왔는지, 소속 정당이 그러한 공약을 지속 실천할 철학과 역량을 축척해왔는지에 대한 진단이 추가로 필요해 보인다. 혹자는 저자들이 진보 정책으로 치우쳤다는 혐의를 내리기도 하지만, 성경에 근거한 이들의 신념과 논리 전개는 너무도 명토하기에 편견이나 자의적 취향이라고 볼 순 없다.

이 책을 통해 정치적 쟁점들을 식견 있게 짚어주는 기독교계의 자산을 발견하는 재미가 제법이다. 한국 기독교의 선거와 정치 참여 수준을 한층 높이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리라 기대된다. 다만, 최근 많은 독자들의 정치적 각성을 일깨워 온 대중정치서적들의 유쾌함과 발랄함에 비해 다분히 진지하고 개념적인 필체가 아쉽다. 정치에 관한 논의를 재미로 다루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투표는 대중의 참여가 가장 중요함으로, 생활밀착형 이슈들로부터 정치 담론을 진솔하게 풀어주는 소통방식도 앞으로 고려할 만하다.

투표장은 그리스도인의 보냄 받은 영역이다. 보냄 받은 제자는 올바른 실천을 위해 배워야 한다. 기독교 정치학자 제임스 스킬렌은 그리스도인 농부라고 해서 개인의 신앙과 양심만으로 식물, 동물과 같은 자연자원들을 활용해서 좋은 식재료 마련하는 법을 알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 유권자들도 정치 현안에 대한 성경적 가치와 실천 방향을 배우고 이를 투표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거 당일 투표를 하든, 여행을 떠나든, 기권을 하든, 두문불출하든 당신은 좌우지간 우리 사회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셈이다. 당신의 이러한 정치적 선택이 타인의 행복한 삶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공의가 완성될 그 날에 보냄 받은 이 땅에서 그 나라의 증인된 본분을 얼마나 성실하게 실천해왔는지 평가받을 것이다.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