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디자이너 권형민씨 “컴패션 활동… 가진 것 나누는 ‘럭셔리한 삶’ 살아요”
입력 2012-04-03 22:11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즐비한 서울 청담동, 그곳에서도 잘 나가던 웨딩드레스 전문점 ‘웨딩 와이즈’의 권형민(50) 대표. 2007년 세계적인 주얼리 브랜드인 스와로브스키 살롱쇼를 계기로 그 이듬해 국내 웨딩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의 스와로브스키 본사에 초청받기도 했다. 2009년 예약손님이 줄을 잇던 청담동 숍을 접고 휴업을 해 주변을 놀라게 했던 권 대표가 최근 재활용과 살림정리법 등을 담은 ‘살림愛’라는 책을 들고 돌아 왔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최고가의 웨딩드레스를 만들던 그녀는 요즘 올이 나간 스웨터에 낡은 레이스를 덧대느라 손바느질을 하고, 호텔에서 버리는 와인박스로 장식함을 만들고, 편지에 넣기 위해 꽃과 잎을 주워 말리고 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터뷰 요청에 권 대표는 서울 한남동 한국컴패션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녀는 “그곳에 모든 답이 있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한국컴패션 건물에 들어서니 해맑은 아이들의 사진과 그들이 그린 그림들이 손님을 맞았다.
“우리 아이들 너무 예쁘죠. 이 아이들 덕분에 이름만 명품이었던 것들에 둘러싸여 있던 제가 진짜 명품을 만나게 됐습니다.”
권 대표는 컴패션 프렌즈의 1대 1 후원 활동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2005년 필리핀 빈민촌의 컴패션센터를 방문한 뒤 삶 전체가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렸다고 털어놨다. “당장 먹을 것도 모자란 아이들인데 모두 귀공자 같은 거예요. 아이들 집에 갔는데 하잘것 없는 것들로 꾸몄는데도 너무나 예뻐서 더 놀랐죠.”
귀국한 뒤 열살짜리 여자아이 후원을 시작한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이들의 저 자존감은 뭐지? 어디서 오는 거지?’라는 의문이 맴돌았다고 했다. 마음속 깊이 똬리를 틀고 있다 수시로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그 의문의 답은 “물질적인 것으로 세상을 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구입해 집안 가득 쟁여 놓고는 그것들을 누리기는커녕 늘 허둥대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더란다.
가족관계도 되돌아봤다. 권위적인 부모 아래서 자라 역시 권위적인 자세로 아이들을 대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아내가 바뀌자 남편도 서서히 달라졌다. 그녀의 남편은 사진작가로 한국컴패션의 사진 대부분을 촬영할 만큼 적극적으로 자원 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식에게는 마음 문을 열지 못했다. 형들에 비해 공부가 처지고 반에서 따돌림까지 받았던 막내가 성에 차지 않아 늘 꾸중을 했던 남편은 어느 날 컴패션 현장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그동안 미안했다. 너를 정말 사랑한다!”
부자관계는 회복됐지만 여전히 학교 적응이 어려운 막내를 위해 부부는 결단을 내렸다. 권 대표는 휴업을 하고, 남편은 막내를 데리고 미국으로 들어갔다. 요즘 막내는 공부에 재미를 붙여 성적도 좋아졌고, 또래보다 작았던 키도 부쩍 자랐다. “컴패션에서 만난 우리 아이들을 통해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충분히 누리는 럭셔리한 삶을 살게 된 거지요.”
숍은 접었지만 알음알음으로 경기도 분당 집까지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드레스 디자인을 계속 해주고 있다는 권 대표는 웨딩드레스 디자인도 바뀌었다고 했다. “전에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만들었다면 지금은 조금 보수적이 됐습니다. 신부가 섹시해보이기보다는 귀하고 아름답게 비춰지길 바라는 아빠 마음으로 만들다 보니. 호호.”
남편, 아들 셋과 함께 7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권 대표는 30일 바자를 열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준비하고 있다. 한국컴패션 2층에서 열 바자에는 우리 집에선 쓸모가 없지만 다른 집에선 잘 쓰일 물건, 비싸지는 않지만 쓰임새가 좋은 물건들을 모아 착한 가격에 팔고, 그 수익금은 컴패션에 기증할 계획이다. 나눔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게 됐다는 그녀는 “꼭 컴패션이 아니더라도 좋으니 가진 것을 나누고, 갖고 있는 것을 충분히 누리는 럭셔리한 삶을 즐겨보라”고 권했다.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은 1952년 미국인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시작했다. 그 후 수혜자에서 후원자로 바뀐 한국컴패션은 2003년부터 다른 10개 국가와 함께 어린이 결연후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