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가 집단행동에 끌려 다녀서야

입력 2012-04-03 18:16

선거철이 되면 집단행동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한 표가 아쉬운 정치권과 정부를 압박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분출된다. 하지만 소수의 이익 챙기기는 공동체의 규범과 원칙을 손상하는 것은 물론 국민 부담마저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4·11 총선에 이어 12·19 대선이 예정돼 있는 올해 역시 이익단체들의 실력행사가 잇따를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도 집단행동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당초 정부는 분만 시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금 분담 비율을 의료계와 50대 50으로 정했으나, 의료계 단체들이 반발하자 30%로 줄여주었다.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가 있어 조정했다지만, 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등이 의사 과실이 없는데도 분담금을 내라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며 전면 거부 선언을 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70%로 늘어난 정부 분담금이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1일 타결된 ‘삼겹살 협상’도 비슷한 사례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삼겹살에 대한 할당관세(무관세) 적용기한을 올 1∼3월에서 4∼6월까지 연장하고 물량을 5만t에서 7만t으로 늘린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한한돈협회(전 양돈협회)는 삼겹살 가격 하락을 우려해 2일부터 마트나 정육점 음식점 등에 돼지고기 출하를 중단하겠다고 맞섰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도 벌였다. 그러자 정부는 부랴부랴 한돈협회와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수입물량을 2만t으로 줄이기로 했다. 삽겹살 파동은 막았지만, 양돈 농가들의 실력행사에 정부가 두 손을 든 모양새다. 정부는 스스로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했다.

‘떼법’이 통하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 떼를 지어 아우성을 치더라도 정부는 공익을 침해한다는 판단이 서면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임기 말로 접어든 현 정부가 그럴 만한 힘을 갖고 있는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