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정부의 신뢰, 언론의 신뢰

입력 2012-04-03 18:14


최근 중국과 한국 인터넷을 달궜던 ‘중국 내란설’은 황당한 내용에 비해 엄청난 전파력을 보였다. “창안제(長安街)가 군용차량으로 숲을 이뤘고….” “정규군 베이징 진입.”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연금됐음.” “서우두(首都) 공항 폐쇄.”

전후 상황을 보면 허구성을 금방 알 수 있는데도 그게 아니었다. 중국 정부는 마침내 대대적인 인터넷 통제에 나섰다. 내란설을 퍼뜨린 용의자 6명을 구속하고 유언비어를 전파한 16개 사이트를 폐쇄해 버렸다. 유명 정치학자와 언론인의 웨이보 계정도 폐쇄시켰다.

관영 언론들은 유언비어를 엄단해야 한다고 합창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수면 위로 드러난 현상만 주목할 뿐 그 바탕은 애써 외면하는 걸 보면서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끝까지 지켜야 할 게 ‘백성들의 신임’이라고 했던 논어의 한 대목이 이 경우처럼 절실할까. 백성들로부터 믿음을 얻기 위해 군대와 식량마저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한 공자야말로 중국사람 아니던가.

정보 소통이 제대로 안 돼 정부와 인민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 내란설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걸 중국 지도자들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바로 잡기위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점 때문에 그들의 고민은 깊어간다.

이런 경우도 있다. 지난 주 열린 서울핵안보정상회의와 관련된 얘기다. 지난달 29일 딥 백 브리핑(심층 배경설명·deep background briefing)에서 당시 한·중 정상회담에서 오간 대화 내용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핵심은 “후진타오 주석이 북한에 대해 민생에 주력하라고 말했느냐”였다.

베이징 특파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주재한 이규형 주중대사는 “회담에 배석했는데 그 발언을 듣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가 보충 질문이 이어지자 “정확한 상황은 다시 확인한 뒤 알려 주겠다”고 물러섰다.

이 대사는 당일 오후 해명 자료에서 “중국은 북측에 위성발사 포기 및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에 다시금 주력하도록 권고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한 매체가 후 주석 발언을 청와대가 실제보다 부풀려 발표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면서 이 대사 발언을 기사화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도…”라면서 일부 매체들도 따라 나섰다.

딥 백 브리핑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약속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다. 딥 백 브리핑이란 국방, 외교 등 현안에 대해 말 그대로 깊이 있는 배경 설명을 할 때 통용된다.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는 통상 ‘정부(외교부) 관계자’ 등으로 취재원을 표현하지만 ‘딥 백’일 때는 ‘관계자’도 쓰지 않는다. 따옴표 없이 ‘∼ 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기사에 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룰은 미국 언론도 따르고 있다.

외교부의 경우 교섭 상대국이 있는데다 국익을 전제로 외국과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이러한 관행을 활용해왔다. 해당 분야 기자들도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정보 획득(국민의 알 권리 확보)과 취재원 보호라는 두 가지 필요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번 해프닝은 정당한 취재원과의 약속을 파기한 것은 물론 국민의 알 권리 확보와도 거리가 멀었다. 브리핑 당사자가 단정적인 발언을 한 게 아닌데도 의심만을 토대로 기사를 쓴다면? 중국 내란설을 보면서, 정상 외교 브리핑을 접하면서 다시 한 번 ‘믿음’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신문의 날(7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